노조 첫 출근 저지 시위…총파업 불사 ‘자진사퇴’ 요구
10년간 내부 출신 문제없었는데…관 출신 임명에 반발
예상대로였다. 김도진 전 은행장 퇴임 이전부터 이후까지 수개월간 논의된 후 지명된 제26대 윤종원 기업은행장에 대한 반발은 극심했다. 김도진 전 행장 퇴임 이전부터 일각에서 제기된 관료 출신 인물의 신임 행장 임명설 노조가 들끓고 있던 상황. 노조는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행장은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왔다. 결국, 3일 윤종원 행장의 첫 출근길은 노조와의 충돌 무산됐다. 기업은행의 발목을 잡은 관치금융 논란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12월 27일 퇴임한 김도진 전 행장의 뒤를 이을 신임 행장으로 윤종원 행장을 선출한 기업은행이 난관에 부딪혔다. 기업은행 내부 출신인 김도진 전 행장의 후임에 대한 논의는 그의 퇴임 이전부터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일각에서 ‘관’ 출신 인물이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던 가운데 청와대 출신인 윤종원 행장의 임명은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 낙하산 인사 비판… 출근 첫날 극한대치
기업은행은 지난 2일 신임 행장으로 윤종원 청와대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제26대 기업은행장으로 취임한다고 밝혔다. 앞서 퇴임한 김도진 전 행장의 후임으로 몇 달간의 논의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 내부에선 외부 인사 특히 정부 관계자의 행장 취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기업은행은 윤종원 행장을 지명했다.
2일 신임 행장으로 임명된 윤종원 행장은 3일 첫 출근일이지 공식 취임식 당일부터 노조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윤종원 행장은 3일 오전 8시 30분께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했다. 당일 현장에는 윤종원 행장의 취임에 반대하는 기업은행 노조원 등이 집결해 “윤종원 전 수석은 능력이 안 된다”, “기업은행은 정부 낙하산 인사가 내릴만한 곳이 아니다”, “관치금융 물러가라” 등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노조는 윤종원 행장을 ‘함량미달’이라고 규정하고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윤종원 행장은 노조원들에게 “함량미달 낙하산이라고 지적하졌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면서 “중소기업과 기업은행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은행 노조는 윤종원 행장의 출근을 저지 시위를 지속했고, 윤종원 행장은 대치 끝에 발길을 돌렸다. 이에 따라 3일 예정돼 있던 공식 취임식은 연기됐다.
◇ 노조는 왜 윤종원 행장에 반대할까?
기업은행 제26대 행장 자리에 관 출신 인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김도진 전 행장 퇴임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나돌던 이야기였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은행으로 금융위원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은행장을 임명하는 구조다. 때문에 과거 자연스레 관 출신 인물들이 행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뚜렷한 시중은행의 성격을 띠고 있어 내부에선 내부 출신 인물들의 행장 취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기업은행 내외부에서 내부 출신 인물의 행장 선임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최근 10년간 기업은행 행장은 내부 출신 인물들이 맡아왔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0년 조준희 전 행장에 이어 권선주 전 행장, 김도진 전 행장 등 3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권선주 전 행장의 경우 첫 여성 행장으로 기업은행 내부 분위기를 일신했고 후임 김도진 전 행장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김도진 전 행장 임기 당시 기업은행은 2018년 1조7643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역시 3분기 기준 1조367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3년간 저금리 기조와 경기 둔화가 심화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우수한 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김도진 전 행장의 거취가 정해지기 전 그가 역대 3번째 연임에 성공한 행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일각에선 일부 관료 출신 인사들이 기업은행장 자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흘러다녔고, 김도진 전 행장 본인은 연임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고, 노조는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 10년 만에 관치금융 논란 휩싸인 기업은행
기업은행 내부에서 외부 인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던 가운데 청와대 출신인 윤종원 행장이 선임, 갈등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종원 행장을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윤종원 행장의 이력에 금융업 실무 경력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노조는 윤종원 행장에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강경태세를 보이고 있다. 윤종원 행장은 현재 자신에 대한 노조의 평가를 부정하며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종원 행장 임명은 내부에선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라며 “이미 10년 연속으로 내부 출신 인물들이 행장을 맡았고 경영 성적 역시 나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히 김도진 전 행장의 35년간 기업은행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점과 행장으로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해 연임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았다”면서 “하지만 김도진 전 행장 퇴임 전부터 외부 관료 출신의 행장 선임 가능성이 불거졌고 결국 논란 속에서 윤종원 행장이 임명돼 내부 반발이 더욱 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종원 행장은 인창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발을 들였고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연금기금관리위원회 의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