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조직 속에서 나타나는 ‘라쇼몽 효과’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1. 사무라이의 죽음과 목격자의 기억조작, “라쇼몽 효과”
숲속에서 사무라이의 시체가 발견됐다. 최초로 목격한 나무꾼이 관아에 신고했다. 수사결과, ‘사무라이 부부가 숲을 지나던 중 산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당하고 사무라이는 죽임을 당했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적, 사무라이 아내, 나무꾼이 재판정에 끌려왔다. 저마다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진술하는데 3명 모두 다르게 말했다. 이에 누구 말이 옳은지 구분할 수 없게 되자 무당을 데려와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냈다. 어이없게도 죽은 사무라이의 진술도 달랐다.
① 산적 : 내가 죽였다. 사무라이 아내가 남편을 죽여달라고 해서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고 내가 이겼다. (해석 : 그는 유명한 산적이었고, 자기의 명성에 걸맞게 기억을 조작)
② 사무라이 아내 : 내가 죽였다. 산적은 나를 겁탈한 후 도망갔다. 남편은 겁탈당하며 저항하지 못한 나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의 가슴을 단도(短刀)로 찔렀다. (해석 : 산적에게 겁탈당한 자신을 합리화,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억조작)
③ 사무라이 영혼 : 겁탈당한 아내가 산적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말했다. 나는 치욕감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에 있던 단도(短刀)로 자살했다. (해석 : 산적에게 겁탈당하는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고 자신은 명예롭게 자살했다고 기억조작)
④ 나무꾼 : 사무라이 아내가 남편과 산적 모두 남자답지 못하다고 모욕하자 남편이 마지못해 산적과 결투하다가 죽었다. (해석 : 사무라이 시체에 꽂혀 있던 단도(短刀)가 매우 진귀한 칼이어서 자신이 숨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결투하다가 죽었다고 기억조작)
여러분은 사무라이를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몇 번을 읽어봐도 헷갈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누가 죽였냐?’가 아니라 ‘같은 사실을 두고도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기억을 조작한다.’라는 것이다. 산적은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사무라이의 아내는 저항하거나 자결하지 않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무라이는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무꾼은 값나가는 단도(短刀)를 자신이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기억을 조작한다.
“라쇼몽 효과”는 1950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 <라쇼몽(らしょうもん, 羅生門)>에서 나온 말이다. 영화 속 네 명의 증인(혹은 살인 피의자)들이 한 가지 살인사건에 대해 각자 다른 증언을 한 것처럼, 관측자의 관점에 따라 스토리나 관찰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기억, 즉 기억조작이라고도 한다.
2. 조직 속의 “라쇼몽 효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쇼몽 효과”는 조직 생활 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자.
1589년 11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 선조는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다. 일본의 군사력과 전쟁 가능성을 정탐하기 위해서였다. 통신사로 파견된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귀국 후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같은 일본을 보고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기억을 조작한 것이다.
① 정사 황윤길 : 도요토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입니다. 일본은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으니 필히 대비해야 합니다. (당시 서인을 대변)
② 부사 김성일 : 도요토미는 전쟁을 일으킬 그릇이 못 됩니다. 만약 전쟁 준비로 민심이 어지러워지면 나라가 더욱 혼란해져서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 동인을 대변)
③ 선조 : (한참을 고민하다가 동인의 편을 들어 주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라.
선조는 고심 끝에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판단했고, 그 대가로 당시 백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도륙을 당하는 참혹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만약, 선조가 “라쇼몽 효과”를 알고 있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전쟁 준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현재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에는 3개 유형의 “라쇼몽 효과 증후군”이 있다.
첫째, 남의 잘못만 기억하는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항상 남의 잘못만 찾고, 문제가 있으면 남 탓을 먼저 하는 사람이다.
둘째. 공만 탐하는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업적만 기억한다.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기도 한다.
셋째, 책임회피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해서 책임을 회피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조직의 핵심참모가 되거나 리더의 위치에 오른다면 그 조직은 오래갈 수 없다. 조직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직을 희생해서라도 개인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사실을 조작하고 적절한 희생양을 찾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에는 ‘보신주의’, ‘남 탓하기’가 성행하고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조직문화의 말로는 몰락이다.
리더는 모든 판단과 결심에 앞서 “라쇼몽 효과”가 개입되지 않았는지 검증해야 한다. 리더 스스로 지금까지의 판단과 결심 목록을 적어놓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결심을 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부하들의 조언 역시 같은 잣대를 적용해서 판단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