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단협’ 트라우마에 갇힌 민주당, 후단협이 뭐길래
‘후단협’ 트라우마에 갇힌 민주당, 후단협이 뭐길래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1.08.13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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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측 “경선 승복 선언하자” 제안
2002년 후단협 생각나는 상황이 돼
 
우여곡절 겪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후단협의 후유증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창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의 발언이 주목된다. 설 의원은 이재명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이낙연 후보 지지자 중 30%가 이재명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해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급기야 ‘후단협’ 이야기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후단협’의 트라우마에 갇혀진 정당이다. 경선 불복은 그야말로 민주당에게 있어 뼈 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이재명, 이낙연 후보가 12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책 라이브 커머스 '더 민: 정책마켓'을 마치고 인사를 나눴다.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이재명, 이낙연 후보가 12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책 라이브 커머스 '더 민: 정책마켓'을 마치고 인사를 나눴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이재명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캠프 선대위원장에게 경선 승복 선언을 제안했다. 경선 승복은 당연한 일이지만 재차 강조하는 것은 2002년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사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이 됐지만 후단협 사태에 빠진 바 있다.

노무현 지지율 떨어지니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출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니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후보 사퇴를 주장한 새천년민주당 의원 그룹이 있는데 이를 후단협이라고 불렀다. 정치사에서 해당행위 대명사로 불리는 사건이면서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경선 불복의 상징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자신에게 덧씌워진 급진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영입했다. 여기에 DJP 연합까지 하면서 1997년 대선서 승리를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이 창당했는데 민주화운동 세력은 물론 보수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정당이 탄생됐다. 게다가 동교동계 등 각종 계파가 모이게 되면서 당내 갈등이 상당했다.

이런 가운데 2002년 대선 경선을 치르게 됐는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존재감이 약했고, 이인제 전 의원이 대세론을 형성했다. 하지만 경선을 치르면 치를수록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돌풍을 일으켰고, 결국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기득권층에서 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믿음직한 후보가 아니었다. 여기에 이회창 전 총재의 돌풍이 거세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후단협이 형성됐고, 정몽준 전 의원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흘러나왔다.

대선 경선에서 후보가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후보로 인정하지 않고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해당행위가 된다.

이재명,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본경선 3차 TV 토론회에 앞서 인사를 나눴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본경선 3차 TV 토론회에 앞서 인사를 나눴다. (사진/뉴시스)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후단협은 노 전 대통령으로는 정권재창출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서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에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해 11월 결국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를 받아들였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승리하면서 단일화에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정몽준 후보가 대선 투표 전날 후보 단일화 약속을 깨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노사모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투표장으로 대거 몰려가면서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

정치적 후유증 남겨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정치적 후유증이 상당했다. 후단협 중 일부는 노 전 대통령이 싫어서 탈당한 후 한나라당으로 향했지만 대부분 다음 선거에서 낙선을 하면서 정치생명이 끝났다.

새천년민주당에 남아있던 후단협 인사들은 사사건건 노 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면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이대로 가면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결국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단협 인사들은 분노를 했고, 마침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총선에서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안을 발의했다.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서 정치적으로 다시 살아났지만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노 인사들은 ‘폐족’이 됐고,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친노 인사들은 다시 살아났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을 창당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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