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에 대한 절박한 요구...정치는 시민들 차별에 방치 말아야”
국회 법사위, 차별금지법 공청회 의결했다...민주당 등 제정 움직임도
[한국뉴스투데이] 단식투쟁부터 비상시국선언까지 강경한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 공청회 계획서가 의결돼 정치권의 반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 양당 대표자에 면담요청
지난 27일 군인권센터는 “하리수씨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단위로 활동 중인 군인권센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양당의 당대표·원내대표에 면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면담 요청의 대상은 ▲박지현·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다.
이날 하리수씨는 면담요청서를 통해 “지난해 故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여러 트랜스젠더들이 차별에 신음하며 세상을 떠났다. 반복되는 비극을 두고 보기 어려운 마음으로,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조속한 시일 내에 국회에서 평등법(이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일과 인권과 차별 현안에 대한 정치의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하씨는 “저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차별과 혐오를 온 몸으로 받아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차별 받아 마땅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국회에서 조속히 법률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두 명의 활동가가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들은 우리 사회 인권 및 차별 현안에 대한 정치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단식 투쟁, 비상시국선언...강경한 제정 요구 이어져
지난 11일부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의 이종걸·미류 활동가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는 이날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고 약속하자는 시민들의 엄중한 요구를 지난 15년 동안 국회와 정부가 무시해왔기 때문에 오늘의 행동이 시작됐다. 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등을 앞당기기 위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일상의 차별 속에서 존재하는 대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단식 투쟁에 돌입한다”고 단식의 취지를 밝혔다.
지난 28일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선언’도 발표됐다. 비상시국선언에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소성욱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연예인 하리수씨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최영애 제8대 국가인권위원장 ▲홍인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 등 각계각층 인사 813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비상시국선언문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뿐만 아니라 이에 편승하거나 방치하는 정치 모두 인권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정치권이 평등의 가치를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동안, 대다수의 시민들은 차별과 혐오가 특정한 소수자 집단이 아닌 모든 사회구성원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그 누구도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시대 인식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간 존엄의 선언과 민주주의의 실천을 다시금 절박하게 요구한다. 국회는 즉각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한다. 시민들을 차별과 혐오에 방치해두는 정치를 바로 지금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한 최영애 제8대 국가인권위원장은 “처음 성폭력특별법을 만들 때, 호주제 폐지를 원할 때 국회와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법이 만들어지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시급하다, 무르익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차별금지법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너무나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국제사회와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다. 두 활동가가 생명을 갉아 단식하고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나라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공청회 계획서 통과...정치계 응답에 이목 쏠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인식한 듯 지난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차별금지법 공청회 계획서를 의결했다. 이에 차별금지법은 본격적인 국회 논의 절차를 밟게 됐다. 다만 공청회의 날짜와 형식, 인원 구성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 법사위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지속적으로 공청회라도 열자고 했을 때 (국민의힘 측에서는) 대선이 끝나면 하자고 했고, 대선이 끝나니 지방선거가 끝나면 하자고 했다. 심지어 아예 논의하고 싶지 않다는 게 국민의힘 반응이었는데, 어제는 공청회라도 여는 데 합의해줬다. 공청회 개최 일시 등도 신속히 처리해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청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28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역시 브리핑을 통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선 많은 의견이 있지만 공론화된 적이 없다. 이제는 공청회를 통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갈등에 대해 서로 얘기를 듣고 대안을 마련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됐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9일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단식 농성 중인 활동가가 위험하다.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여성, 장애인, 아동 등의 생존도 위태롭다. 차별금지법은 제정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박 위원장은 옆 자리의 윤호중 위원장을 돌아보며 “3월에 제게 공동비대위원장을 제안하면서 했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같이 공동 비대위원장을 해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자고 했다. 그때 그 말씀을 듣고 이걸 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 같이 하자고 했으니 이제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21대 국회에는 ‘차별금지법안’ 또는 ‘평등에 관한 법률안’ 등의 이름으로 장혜영, 이상민, 박주민, 권인숙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4개의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발의돼있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관련 국민동의 청원은 10만명을 넘겨 법사위에 자동 회부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