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일괄지급에서 차등지급으로 후퇴해 비판 이어져
지선 앞둔 민심 잡기...세수 추계 빗나간 기재부 비판도
[한국뉴스투데이]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 역대 최대 규모인 59조원 추경을 발표하며,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최소 600만원부터 최대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최대 규모 추경...소상공인에 600만원+α
지난 12일 윤석열 정부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코로나 완전극복과 민생안정’ 이라는 주제로 정부 출범 이후 첫 추경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은 총 59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종전 최대 기록인 2020년 3차 추경 당시의 35조1000억원보다도 24조3000억원 많은 수준이다.
다만 국채 추가 발행은 피했다. 정부는 초과세수가 53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그 중 국채 상환에 활용할 9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44조3000억원을 추경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세계잉여금·한은잉여금·기금여유자금 등 가용재원 발굴로 8조1000억원, 지출 구조조정으로 7조원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전체 추경액 중 72%(26조3000억원)를 소상공인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약 370만명에 최소 600만원을 지급하고, 피해 정도에 따라 최대 1000만원까지 지급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의 1호 공약으로 소상공인에 온전한 손실보상을 지원하겠다며 이같이 공약한 바 있다.
또한 소상공인의 손실보상 보정률을 90%에서 100%으로, 보상지원의 하한액을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1조5000억원이 소요된다. 이외에도 이번 추경은 ▲긴급생활안정지원금 1조원 ▲취약계층 대상 금융지원 1700억원 ▲특고·프리랜서·예술인·운전기사 지원 1조1000억원 ▲서민·농어가 지원금 2000억원 ▲가공식품·외식업계 물가안정 지원금 1000억원 ▲산불피해복구 300억원 ▲산불대응 강화 30억원 등에 사용될 방침이다.
차등 지급으로 ‘공약 파기’ 논란에 급선회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2020년 이래로 약 2년 간 소상공인들은 영업시간과 사적모임 인원에 제한을 두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인한 피해를 견뎌왔다.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중소기업기본통계상 소상공인과 소기업 약 551만곳이 2019년 대비 2020~2021년 입은 손실은 약 54조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7차례에 걸쳐 긴급재난지원금,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경제위기 및 방역상황 장기화 관련 지원 등 코로나19 피해 관련 추경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그 대상과 금액이 협소하다며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불완전한 손실보상이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따라서 소상공인들은 손실보상을 소급 적용할 것, 피해보정율을 100%로 확대할 것, 손실보상의 대상을 확대할 것 등을 요구해왔다. 윤석열 정부의 앞선 공약과 이번 추경 결정 역시 이러한 소상공인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난달 28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과학적 추계 기반의 온전한 손실보상을 위한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을 발표하며 개별 업체의 규모와 피해 정도, 업종별 피해 등을 고려해 지원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방역지원금 600만원을 일괄적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것에서 다소 후퇴한 셈이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600만원 이상의 일괄 지급을 기대해온 상황에서 차등지급안이 발표돼 실망스럽다. 인수위의 차등지급안은 현 정부안보다 오히려 크게 퇴행한 것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고, 참여연대는 “100일 명칭이 무색하게 어떤 실질적인 내용도 제시되지 않았다. 차등지급 역시 피해 지원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선 즉시 1000만 원을 준다, 소상공인 부채를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린다던 윤 당선인의 말을 정면 파기하는 셈”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통해 소상공인의 부채를 재조정하고 탕감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일괄지급을 차등지급으로 바꿨음에도 공약 변경에 따른 사과나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인수위는 “혼선이 발생한 측면이 있어 몇 가지 말씀드린다. 민주당 정부가 지급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급할 계획이다. 일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는 1000만원을 초과하는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인수위는 “당선인의 긴급 구조 지원은 약속 그대로 시행할 것이다. 또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원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초과세수 53조원에 기댄 추경안...여·야 민심 경쟁도
그럼에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지방선거를 앞둔 표심을 의식한 듯 정부는 이 같은 최소 600만원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추경액을 보다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방선거에서의 소상공인 민심 잡기 경쟁에 나섰다.
지난 12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소상공인 중소기업인들에 온전하고 두터운 보상이 돼야 한다”며 47조원 규모의 자체 추경안을 제시했다. ▲3차 방역지원금 1000만원 지급(19조8000억원) ▲손실보상 소급 적용(8조원) ▲자영업·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지원(2조1000억원) ▲취약계층 지원 사각지대 해소(3조1000억원) 등으로, 정부 추경안의 소상공인 및 민생 지원 투입 비용보다 10조원 가량 증액됐다.
그러나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이 53조원이라는 초과세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남아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한마디로 가불 추경”이라고 비판하며 “국정을 가정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국가 재정에 분식회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아울러 재차 기획재정부의 세수 추계가 잇따라 빗나간 만큼 정확성에 대한 의심도 나온다. 지난해 초과세수 61조4000억원에 올해 초과세수 53조3000억원을 더하면 최근 2년간 정부는 115조원의 세금을 더 걷어들인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월에 올해 세입 예산을 편성했고, 이 때문에 물가·유가·수입액 증가 등의 변수를 반영하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 추경안은 13일 국회에 제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주 국회를 찾아 추경안 처리 협조를 요청하는 시정연설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예산결산특위와 상임위별 심사를 거쳐 이달 중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처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