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선 장애인 아들과 함께 추락해 사망
장애인 자녀 돌보는 가족의 신체·정신 건강 심각
24시간활동지원서비스 등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한국뉴스투데이]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가정에서 같은 날 2건의 극단적 선택이 발생하면서, 장애인과 그 가정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 돌보던 부모, 잇따른 극단적 선택
지난 24일 인천 연수경찰서는 인천 연수구의 한 주택에서 A(63)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3일 4시 30분경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인 30대 딸 B씨에게 수면제를 다량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A씨는 B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으나, 약 6시간 뒤인 오후 10시 30분경 집에 찾아온 아들에 의해 발견됐다. 소방대원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으며 A씨는 쓰러진 채로 구토 증상을 보였지만 서서히 의식을 회복했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생계를 위해 지방에서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약 30년간 홀로 딸을 돌봐왔다. 그런데 위탁 시설에 보낼 경제적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딸이 최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25일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선 A씨는 “왜 딸에게 수면제를 먹였느냐. 딸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같이 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A씨가 범행을 저지른 23일, 또 다른 장애인 자녀 가정에서도 극단적 선택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5시 45분경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40대 C씨와 6세 아들 D군이 추락한 채로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5시 49분경 소방대원이 도착했지만 도착 당시 이미 이들은 심정지 상태였다.
이들은 해당 아파트의 21층에서 추락했으며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 함께 살고 있던 C씨의 남편과 6세 딸은 집을 비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D군은 정부에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발달재활바우처를 이용해 정부가 운영하는 발달재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C씨는 평소 D군을 기르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죄의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부검은 실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비극...장애인 가정 지원 확대해야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선택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지난 3월 2일 경기 시흥에서는 한 50대 여성이 발달장애를 가진 20대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같은 날 경기 수원에서도 홀로 아들을 돌보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 40대 여성이 8살 아들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벌어진 2건의 사건 이외에도 최근 3년간 ▲2020년 3월 제주 한 엄마가 발달장애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020년 4월 서울에서 4개월 된 발달장애자녀 돌보던 엄마가 자녀 살해 ▲2020년 6월 광주 20대 발달장애자녀 돌보던 엄마가 자동차 안에서 자녀와 극단적 선택 ▲2021년 2월 서울 50대 여성 발달장애 딸 함께 극단 선택 뒤 홀로 사망 ▲2021년 4월 서울▲2021년 5월 충북 ▲2021년 전남 등 발달장애 아동을 돌보는 가정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비극에는 부모가 떠맡은 과중한 돌봄 부담, 가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 경제적인 위기, 사회적인 관계 단절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다. 특히 발달장애 자녀는 어릴 때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도 장시간 돌봄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활동지원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어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오롯이 떠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시기에 발달장애인 가정의 돌봄 부담은 더욱 무거워졌다. 복지관 등 장애인 시설이나 활동서비스 등이 코로나19로 폐쇄·중단돼, 복지 공백 속에서 부모의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지난 2020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복지관, 발달재활서비스, 주간활동서비스 등 기관의 휴관·폐쇄로 이용이 중단된 비율이 적게는 62%(발달재활서비스)에서 많게는 97%(장애인복지관)에 이르렀다.
특히 발달재활서비스와 같이 이용 적격자 중 76.3%가 평소 이용할 만큼 이용률이 높은 경우 휴관을 함으로써 서비스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 됐다. 이에 전체 응답자 1174명 중 20.5%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부모 중 한쪽이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머니가 그만둔 경우가 78.8%로 대부분이었다. 돌봄 부담이 경제적 위기로 연결되는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긴급 지원 정책에 대한 홍보 부족도 문제로 꼽혔다.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내놓은 긴급활동지원급여 제공 등 주요 대책을 전혀 모르고 있는 부모가 전체 응답자 중 66.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또 지원 사실을 알더라도 감염 공포로 인해 사실상 이용하지 못한 경우도 16.3%에 달했다. 국가의 부족한 지원마저도 사실상 실효를 갖지 못한 셈이다.
과중한 돌봄 부담과 그로 인한 경제적 위기는 부모의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가족 돌봄자의 36.7%가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고, 35%는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 적이 있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의 원인으로는 돌봄 스트레스(75.5%), 경제적 문제(68.6%), 우울·불안(66.5%) 등이 꼽혔다.
시간적·체력적 여력이 없어 주변 사람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 결국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지인 등과 자주 연락을 하지 않거나 만나지 않는다’는 응답은 67.2%에 달했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50.8%,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도 21.7%에 이르렀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옆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국가가 국민에게 아무런 희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형편없는 지원체계로 인해 이에 대한 책임을 부모 등 가족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는커녕 그 지역사회 내에 제대로 된 지원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부모연대는 “(그런데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발달장애 영역은 전임 정부에서 진행했던 정책들의 재탕에 불과했으며,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4월 19일 장애인 부모 등 556명이 삭발했고, 이튿날인 20일부터 장애인 부모 4명이 15일간 단식 농성을 진행했다. 현재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할 것 ▲지원체계 뒷받침 위한 국가 차원 종합계획 수립할 것 ▲지원체계와 종합대책 위한 민관협의체를 설치할 것 ▲발달장애인법 및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등 법령 전부 개정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부모연대는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에 이른 두 가족을 추모하며 ‘죽음을 강요 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를 열었다. 부모연대는 이날 삼각지역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과정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5시간 대치하기도 했으나 합의 끝에 1번 출구 인근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부모연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함께 다음 달 2일까지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