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특별한 인연을 만나러 태백을 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살았는데 복잡한 것이 싫다며 난데없이 한적한 태백으로 이사를 간 가족이다.
그 인연의 주인공은 4인 가족. 미국인 남편, 재미교포 아내, 12살 딸, 5살 아들.
이 중에서 5살 아들은 3살 때 입양을 한 아이다.
1년 전 한 카페에서 미국인 남편을 우연히 만난 뒤로 가족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번에 그들은 기꺼이 안방을 내주며 나를 초대했고, 그 따뜻한 마음을 한사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응하게 됐다.
보통은 평일엔 일을 하느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주말쯤에 가려고 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주말과 휴일엔 공부를 하고, 교회를 가야해서 더 바쁘다며 괜찮으면 평일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역시 주중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리 문제될 게 없어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궁금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해보이지도 않는데, 특별한 직업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아끼며 쓴다고 해도 4인 가족이 쓰는 비용이 있을 텐데 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이 딱히 없다. 고작해야 몇 만원 받고 주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정도, 그런데도 기회가 되면 자원봉사를 하려고 했다.
이 참에 물어봤다.
남의 경제적 사정을 물어보는 것도 좀 실례긴 하지만 어떻게 생활을 하며 지내는 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미국의 비영리단체에서 주는 지원비를 받으며 봉사를 하는 거라고 했다. 거기다 교회나 지인들이 좋은 일을 하라며 조금씩 보태주기도 하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4인 가족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부의 바람과 신념을 굽힐 만도 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부모와 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 같다.
이들에겐 앞으로 들어갈 아이들의 교육비와 노후준비에 대한 걱정은 없다. 지원을 평생 보장받았다거나 빵빵한 지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니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다만, 현재를 충실히 산다면 미래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때문에 당장 내년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그들을 만나고 와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즐기기 위해서 일을 하는가? 돈이 아니라면 과연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과 영혼을 위한 일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가슴 뛰는 일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이유로 힘들게 번 돈을 써버리고…….
‘이 일은 나와 맞지 않아, 그만 두어야 해’ 하며 늘 생각하지만 한 달에 한 번 꽂히는 월급 이라는 마약 때문에 연장, 연장, 반복, 반복……. 그러는 동안 나의 마음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지금처럼 몸을 혹사하며 돈을 벌고, 일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사회의 기계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마음 충만하게 보내는 것을 보면…….
이제 아이들의 낡은 운동화, 유행이 훨씬 지난 옷이 결코 초라하게 보이지 않는다. ‘신성한 노동’으로 오히려 그들 4인 가족의 행동과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