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서 범행 당시 영상 발견돼 불법 촬영 정황까지 포착
피해자, 추락 후 1시간 이상 살아있었다...학교 경비 시스템 지적도
인하대 대책위 재발방지책 발표...가해자 퇴학, 경비·성교육 강화 등
[한국뉴스투데이] 인하대학교 남학생이 동급생을 성폭행하고, 추락한 피해자를 방치한 채로 도주해 숨지게 한 준강간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동급생 성폭행 후 숨지게 해 구속
지난 17일 동급생과 학교 건물에서 술을 마시다 성폭행한 뒤 3층에서 떨어져 숨지게 한 인하대학교 1학년생 A(20)씨가 구속됐다. 인천지방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15일 새벽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의 한 단과대학 건물에서 같은 학교 학생인 20대 여성 B씨를 성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성폭행한 뒤, B씨가 3층 복도 창문에서 추락하자 자신의 자취방으로 달아났다. A씨는 범행 전 B씨와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이날 오전 1시 20분경 A씨가 피해자 B씨를 부축해 한 단과대학 건물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A씨가 두고 간 휴대전화를 확인했으며, 탐문수사 끝에 A씨의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이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는 과정에서 A씨가 만취 상태인 피해자를 학교로 데려가 성폭행한 사실을 시인해 경찰은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다만 A씨는 “(B씨를) 밀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추락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경찰은 우선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을 때 적용하는 준강간치사죄를 적용했다.
다만 추가 조사에서 A씨가 B씨를 밀어 추락하게 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경찰은 준강간살인죄로 죄명을 바꿀 방침이다.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강간죄와 구분된다.
도주, 증거인멸 시도, 불법촬영 정황까지
피해자는 이날 새벽 3시 49분경 해당 건물 앞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가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행인이 잘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대의 캠퍼스 안이어서 B씨가 뒤늦게 발견됐으며, 추락 이후 1시간 이상 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119구급대가 출동해 현장에 도착했을 시점에도 B씨는 심정지 상태가 아니었으며, 미약한 호흡과 맥박이 남아있었다. 이후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도주하지 않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 B씨가 생존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현장과 10m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B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의류들이 발견돼, 경찰은 A씨가 도주하는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위해 해당 유류품들을 버린 것인지도 밝힐 예정이다. 이에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면서, 유류품에 대한 정밀 감정도 함께 의뢰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발견한 A씨의 휴대전화에서 범행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이 발견돼, 불법 촬영을 시도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경찰은 A씨가 의도적으로 불법 촬영을 시도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자료를 분석하고 있으며, 영상이 제대로 촬영되지 않은 경우에도 불법 촬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2차 가해 확산도...인하대 재발방지책 발표
사건이 알려진 이튿날 오후 사건 장소였던 인하대 단과대학 앞에는 B씨를 위한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인하대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한 추모객들이 추모공간을 찾아 헌화했고, 근조화환들이 줄지어 늘어지기도 했다. 분향소 옆 게시판에도 애도가 담긴 포스트잇들이 붙었다. 해당 추모공간은 유족의 뜻에 따라 B씨의 장례가 끝난 기점인 18일까지 운영됐다.
그런데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B씨의 신상을 찾으려 하거나 외모를 언급하고, B씨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범행을 B씨의 책임으로 돌리는 등의 게시물들이 확산해 문제가 됐다. 이는 명예훼손인 동시에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위법 행위다.
이에 인하대 측이 꾸린 인하대학교 성폭행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입장문을 내고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하대 중앙운영위원회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학생자치기구 차원에서 대응 전담팀(TF)을 꾸려 2차 가해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대책위는 “교내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망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에게 인하대학교 구성원 모두 같은 심정으로 머리 숙여 삼가 애도를 올린다”며 “한순간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에 빠져있을 유가족에게도 학교로서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교과 과정 내 성평등 및 성교육 강화 ▲학생심리 상담소 활성화 ▲정기 순찰 확대로 야간 치안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으며,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모든 건물의 출입 금지 ▲교내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 증설 ▲보안·순찰 인력 확충 등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A씨에 대해서는 학칙 및 추후 수사 결과에 따라 퇴학 등 징계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하대는 지난 2012년 35명이었던 경비 노동자를 15명으로 줄이고, 각 건물마다 경비 노동자가 상주하는 경비 방식 대신 폐쇄회로(CC)TV를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인하대는 지난 몇 년간 경비 노동자 1명이 60대에 달하는 폐쇄회로(CC)TV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이에 이번 사고 역시 학교 측의 허술한 경비 시스템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경찰은 A씨의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혐의가 현재까지 준강간치사인 만큼, 신상정보 공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살인, 인신매매, 강간 등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할 때만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추후 수사에 따라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돼 A씨가 준강간살인죄를 적용받을 경우에도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는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볼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지 등의 조건을 따져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