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쌀 90만톤 매입...재고량 190만톤 달할 듯
정 장관 “가루쌀은 신의 선물”...밀 대체 여부 불투명
[한국뉴스투데이] 줄어드는 쌀 소비량에 비해 생산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으면서, 쌀값은 홀로 역대급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쌀 매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의결됐고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루쌀 생산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쌀값 하락세를 막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 쌀 매입 의무화’ 개정안 의결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전체 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사실상 단독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쌀값이 5% 이상 하락하거나 쌀 생산량이 3%를 넘으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이를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개의 예정이었던 농해수위 전체 회의는 국민의힘의 강한 반대로 갈등을 빚으며 40분가량 지연됐다. 결국 소병훈 민주당 소속 농해수위 위원장은 정족수를 채웠다며 개의한 뒤 재석 17명 중 찬성 10명, 기권 7명으로 의결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이 오히려 쌀의 과잉 생산을 촉진할 수 있고,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반대해왔다. 이에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으나 법안 심사가 지연되자 민주당은 지난 12일 이를 단독 처리해 전체 회의로 넘긴 바 있다.
법안이 의결된 뒤 지난 20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농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행되면 안 된다”며 “쌀이 남아돌면 제값을 못 받는데 야당에서 제기한 법이 시행되면 과잉생산을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재량으로 맡겨놔야,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점차 줄여가야 우리 재정과 농산물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법으로 매입을 의무화 하면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과잉 공급 물량은 결국 폐기해야 해 농업 재정의 낭비가 심각해진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이날 농해수위에서 처리된 개정안은 앞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을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는 만큼 정기국회 내 처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속되는 과잉 생산 문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쌀 20kg의 가격은 4만5000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지난해 11월 쌀 가격은 5만3746원이었지만, 지난 4월에는 5만426원, 지난 7월에는 4만7354원을 기록했다. 1년 전 동기 비해 약 25% 하락한 것으로, 이는 통계 조사를 시작한 1977년 이후 가장 낮은 하락 폭이다.
전쟁과 불황으로 물가가 역대급 상승 폭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쌀 가격이 홀로 폭락 중인 원인은 적은 수요에 비해 많은 생산에 있다. 올해 태풍이 지나간 후로는 비가 적었고 일조량도 풍부해, 전국의 벼농사는 지난해에 이어 풍년을 맞았다. 지난 7일 통계청은 올해 쌀이 380만4000톤 생산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앞서 예상한 쌀 소비량인 361만톤보다 약 30톤가량 많은 규모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서둘러 90만톤을 사들이기로 했다. 현재 정부 양곡창고에 쌓인 쌀 재고량은 약 103만톤인데, 올해 추가 매입한 쌀까지 더해지면 올해 연말 재고량은 193만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7년 244만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재고량이다. 1만톤 당 15억원 수준인 보관료에 더해 가치 하락 비용 등을 고려하면 재고로 인한 손실 역시 적지 않다.
줄어든 쌀 소비 대책은
남아도는 쌀 문제가 반복되자 쌀 소비량을 늘리려는 시도 역시 계속돼왔다.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1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논에서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촉진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연평균 2만6000ha에 벼가 아닌 콩·옥수수 등을 재배하면 1ha당 300만원을 지급한 것이다. 그러나 벼 재배 면적은 오히려 2만4000ha 늘어났다.
정 장관은 쌀 생산량이 줄어 쌀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며 타작물 재배 사업 대신 가루쌀을 활용한 이모작으로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가루쌀은 성질이 밀과 비슷해 밀가루로 공정하듯 빵·면·맥주 등을 만들 수 있는 품종이다. 쌀의 소비량을 늘리면서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밀의 소비량은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정 장관의 입장이다.
지난 13일 정 장관은 “가루쌀은 쌀 수급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가루쌀 활성화 지원 사업을 통해 생산단지 확대와 가공업체의 시제품 개발 및 마케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 71억원 규모의 가루쌀 산업화 지원 사업 및 720억원 규모의 전략작물직불 산업을 반영한 바 있다.
이어 정 장관은 “가루쌀 재배를 안정 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내년에도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현장기술지원단을 운영할 계획이고, 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쌀가루 산업 발전협의체를 지속 운영하면서 기업의 제품개발을 지원하겠다”며 추진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글루텐이 없는 만큼 빵 제조 등 밀가루 대체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점 ▲가루쌀 제품의 경제성이나 상품성이 검증되지 않은 점 ▲현재 12개 업체, 280톤 수준인 가루쌀 생산 규모를 5년 내 20만톤으로 늘리는 것의 현실성 여부 등으로 이러한 정 장관의 정책 추진에도 우려는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