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회복의 관점 반해...실효적 효과도 미흡”
촉법소년 증가 및 흉포화, 사실 아니라는 지적도
[한국뉴스투데이] 법무부가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을 1살 낮추기로 결정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소년범에 대한 교화 및 사회 복귀 관점에 반한다는 취지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 1살 낮춘다
지난 26일 법무부는 ‘소년범죄 종합대책’ 발표를 통해 형법·소년법 개정으로 형법 미성년자 연령을 기존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1살 낮추겠다고 밝혔다. 현행 형법상 만 10세에서 14세 미만인 이른바 ‘촉법소년’은 형사 미성년자로 규정돼,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도 형사 처벌 대신 사회 봉사나 소년원 송치 등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보호처분을 받아 왔다.
이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흉포화된 소년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 중 13세 비중이 약 70%로 상당하고, 해당 연령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나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지난 2017년 7887건이었던 촉법소년 범죄 접수 건수는 지난해 1만2502건으로 증가했고, 강력범죄 비율 역시 2005년 2.3%에서 2020년 4.86%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인천에서 한 중학교 여학생이 남학생들에게 성폭행 당한 뒤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데,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에 해당해 처발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낮춰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만명 이상이 동의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강력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촉법소년으로 처벌을 피한 사례가 잇따라 주목을 받으면서, 지난 6월 법무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량이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70년간 유지된 촉법소년 조항을 변경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봤다.
이외에도 이날 법무부는 ▲소년 사건이 많은 인천·수원지검에 전담부서 ‘소년부’(가칭) 설치 ▲교화 효과 크지 않은 벌금형 선고 자제 ▲소년원 만기 퇴원 소년에 보호관찰 가능한 조항 마련 ▲보호관찰 전담 인력 증원 ▲소년분류심사원 1개에서 3개로 확충 ▲구치소 내 성인범과 소년범 엄격 분리 ▲소년교도소 수형자 검정고시 과정 수강 의무화 ▲소년전담 교정시설 마련 등의 소년범죄 관련 정책도 함께 발표했다.
법무부의 발표 이후 각종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강한 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피해자나 주변에 피해자가 있거나, 범죄 위험성에 대해 느끼고 계신 분들 입장에서는 약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
또 윤 대통령은 “범행 당사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실제 피해를 당하거나 잠재적 상태에 놓여있는 많은 사람의 인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적 추세에 맞춰서 조처를 한 번 해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에도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은 바 있었다.
인권위, 반대 의사 표명
그러나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해당 개정안은)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기준이 요구하는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의 관점에 반할 뿐만 아니라,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효적 대안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앞서 지난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형사 책임 최저 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고 만 14세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구금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인권위는 어린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를 확대해 소년의 사회복귀와 회복을 저해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며, 소년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에 적절히 대응하는 실효적 대안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인권위는 소년 범죄의 재범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보고, 법무부 장관에게 소년 분류 심사원, 소년원, 소년 교도소 등 교화·교정 시설의 확충, 소년을 담당하는 보호 관찰관 인원 확대, 임시 조치의 다양화, 교화 프로그램 개선 등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인권연대는 이날 법무부의 이번 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자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소년은 교육의 대상이어야 하고, 소년범죄는 형벌이 아닌 교화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반발 이유다.
특히 인권연대는 법무부가 제시한 촉법소년 범죄 접수 현황 자료는 법원 접수사건을 기준으로 한다고 보고 있다. 범죄 신고에 해당하는 접수사건이 곧 형사사건의 전모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자료의 근거는 접수가 아닌 처분 결정 사건이 되어야 한다며 인권연대는 촉법소년 접수사건 대비 처분 결정 비율은 지난 2016년 40.7%에서 2020년 32.7%로 오히려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연대는 촉법소년 범죄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는 법무부의 발표는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며, 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촉법소년의 범죄 건수는 전체적으로 완만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년범은 매년 증감을 반복하는 추세이고, 전체 강력범죄자 중 소년 범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13.8% 이후 전체적으로 감소해 2020년 9.0%였다. 이에 인권연대는 소년범죄가 우리 사회 전체 강력범죄에 비해 엄벌을 주장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대법원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담은 의원 입법안들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최근까지 내왔던 것으로 알려졌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형사 미성년자의 나이를 정하고 있는 형법 제9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여야 모두 기준 연령 하향에 동의하고 있는 만큼 개정은 순항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