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물권’] ② “아직도 낯선 단어?” 애호가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기획 ‘동물권’] ② “아직도 낯선 단어?” 애호가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12.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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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인종 평등 주장하면 흑인 해오가?” 동물권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독일, 매년 최대 77만원 반려동물 세금 납부, 미국은 28시간 이상 차량 탑승 금지
한국, 33%만 ‘동물권’ 알고있지만, “동물에게도 기본권이 있다”는 데는 79% 동의
동물원에서 태어난 퓨마가 탈출 해 추적 끝에 사살한 사건은 잊히지 않는 충격으로 남아있다. 화학품을 위해 동물 실험을 자행하고 캣맘과 원주민의 싸움은 폭력으로 번진다. 동물권을 위하는 일이 인권보다 더 중요하냐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혐오의 세상이다. 하지만 이젠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 ‘동물권’. 인간과 같이 비인간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무거운 주제를 탐구한다. <편집자주>
서구에서 동물권 인식이 처음 출발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사진/ 픽사베이)
서구에서 동물권 인식이 처음 출발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사진/ 픽사베이)

짧은 동물권의 역사, 그러나

동물권(動物權, Animal Rights)은 인간동물과 같이 비인간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개념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으로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의견과 접근 방법이 있긴 하지만, 공통적인 개념은 동물이 하나의 돈의 가치로서, 음식으로서, 옷의 재료로서, 실험 도구로서, 오락을 위한 수단으로서 쓰여서는 안 되며, 동시에 인간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거가 2014년 발간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따르면 우리가흔히 알고 있는 ‘시민권’은 지난 은 1960년 후반을 기점으로 크게 높아졌다. 이후 1970년대가 들어서고 ‘여성권’과 ‘아동권’에 관한 인식이 생겼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되야 한다는 인식이 확디됐다. 이때부터 여성 차별 금지나 아동 노동 금지 등의 원리가 적극적으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동물권’은 어떨까?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1975년 내어놓은 책 <동물해방>이 동물권 운동의 개념을 촉발시켰다. 당시 인종이나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회 움직임이 폭 넓어지던 시기라 이 책은 종(種) 차별에도 함께 반대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피터 싱어는 책을 통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동물 애호'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인종이나 성 평등을 주장한다고 해서 '흑인 애호가' 또는 '여성 애호가'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동물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애호해야 한다고 가정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논증은 당시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오가던 동물권 논의를 물밑에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동물권 논의가 확산한 이후 동물 학대 건수가 급감하고, 이 궤적과 함께 성차별, 아동 학대, 인종 혐오 범죄가 함께 줄어들었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럽프가 동물 학대를 최대 7년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안에 서명한 뒤 미국은 동물 범죄를 연방 범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럽프가 동물 학대를 최대 7년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안에 서명한 뒤 미국은 동물 범죄를 연방 범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문어와 오징어까지 포함하는 유럽

동물권이 가장 엄격한 나라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 독일의 경우 1993년 처음 동물 보호법이 통과됐다. 사람들이 독일에서 개를 입양하면 매년 훈데스테이어(hundesteuer)라는 불리는 축견세를 납부해야 한다. 매년 한화로 14~77만원 선의 반려동물 보유세로서 반려 동물이 대중 교통과 대부분의 레스토랑 및 카페와 같은 공공 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독일의 엄격한 반려동물 보호법은 2021년에 다시 한 번 업데이트됐다. 견주가 하루 두 번 최소 총 1시간 동안 개를 산책 시켜야 하고, 장시간 사슬에 묶여 있으면 안되며 주인이 하루 종일 개를 혼자 두면 안되는 것 등을 포함했다.

1966년 동물복지법을 처음 제정한 미국은 동물 치료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8시간법이다. 이것은 28시간 이상 연속으로 동물을 차량에 태울 수 없는 내용이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럽프가 동물 학대를 최대 7년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안에 서명한 뒤 미국은 동물 범죄를 연방 범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극한의 날씨에 차량에 동물을 남겨두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핫카’ 법안 등이 화제다. 핫카 사례는 SNS상에서 관련한 유명한 동영상들을 자주 마주칠 정도로 미국에선 대중적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우 1911년 동물 보호법이 통과되었는데, 지난 2007년에 업데이트되어 최대 형량이 12개월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특이한 점은 영국의 동물법에는 문어와 오징어와 같은 두족류가 포함돼있다. 유럽 반려동물 수의사 연합(fecava)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유럽인은 약 1201유로를 반려동물에게 지출했다. 수의사 관리/예방 접종(241유로), 미용(122유로), 식품을 제외한 용품(유로109유로), 선물(63유로), 애완 동물 보험(63유로) 등이다.

지난 여름, 대구 북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에서 전국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칠성개시장 완전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여름, 대구 북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에서 전국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칠성개시장 완전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림픽, 월드컵 기념으로 동물권 대두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동물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사실상 가장 늦게 등장한 권리인 셈이다. 한국에서 동물이 ‘애완’이 ‘반려’로 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은 개고기를 육식의 하나로 인정하는 문화였다.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1991년 통과된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생명, 안전 및 복지를 증진하고 사람들의 정서적 발달을 촉진하여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동물 학대를 방지하고 동물을 적절하게 보호·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월드컵까지. 국제 스포츠 행사를 거치면서 한국 내 개식용 문화 종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한국을 ‘개 식용 국가’로 보는 것에 대한 내부적 의문과 성찰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몇개의 단체들이 생겨나며 개고기 가공식품, 화장품 발표회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즉석보신탕 철폐 캠페인, 유기동물입양 캠페인, 동물 학대 고발 등의 활동이 퍼져 나갔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는 약 313만 가구에 이른다.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늘어나면서 한국에도 ‘동물권’ 도입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국리서치는 지난 3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가 우리 주변 동물 및 동물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에서 ‘동물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절반 이상(51%)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모르는 개념이라고 답했고,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응답도 16%였다. 그런데 응답자에게 동물권의 개념(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 후 의견을 묻자, 응답자의 79%가 ‘동물에게도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는 동물권이라는 개념이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동물에게도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응답이 높은 것은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동물권을 가진 동물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조사 결과 모든 동물이 보편적으로 동물권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35%에 그친 반면, 농장동물, 실험동물 등 특수한 목적이 있는 동물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이 동물권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49%였다. 이러한 결과는 동물 권리에 대한 의식이 아직 반려동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동물의 가치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르므로 동물권의 보호를 헌법으로 의무화해선 안된다’는 응답이 45%로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므로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41%)’보다 우세했다. 동물권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의 보호를 의무화하는 것에는 미온적인 입장인 것이다.

현행 민법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피해에 대한 배상이 ‘물건’ 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되어 왔다. 이는 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괴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법무부는 지난 2021년 9월 민법 개정안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라는 선언적인 조항을 신설했다. 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고 동물보호 의식이 높은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한 이 조항에 대해 10명 중 7명(73%)이 ‘적절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동물의 처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문제는 이 인식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반려동물 위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동물의 처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문제는 이 인식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반려동물 위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동물은 물건이 아니지만 학대 민감성은 낮아

그러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동물의 범위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이 그은 선은 분명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에서 ‘동물’에 해당하는 범위를 묻자 ‘반려동물’이 79%로 가장 높았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49%)’, ‘길고양이, 비둘기 등 도시 야생동물(41%)’. ‘농장동물(36%)’. ‘멧돼지, 고라니 등 숲·산의 야생동물(35%)’, ‘실험동물(33%)’이 뒤를 이었다. 농장동물과 야생동물, 실험동물이 ‘동물’에 해당된다는 응답은 반려동물의 절반 수준인 것이다. 이는 인간과 접점이 많고 심리적으로 가까운 동물만 인간이 보호해야 할 ‘생명’이며,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 등의 인식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이용하는 ‘물건’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이다.

동물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은 동물 학대에 대한 인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물에 대한 학대 문제 심각성을 물은 결과, 반려동물, 실험동물, 도시 야생동물, 농장동물에 대한 학대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어 우리 사회에 동물 학대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학대로 인한 죽음이나 상해 등 법이 정한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불결한 환경, 밀집 사육, 감금 사육, 동물의 신체 변형 시술과 같이 공장식 축산업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행위들 역시 학대라는 의견이 70% 이상으로 높았다. 또한 동물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 겁을 주는 행위와 같은 정서적인 위협도 ‘학대’라는 응답이 과반에 달해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인식과 민감성이 법이 정한 수준에 비해 높음을 보여준다.

동물 학대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학대 행위에 대해 법이 정한 수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동물과 실험동물에 대한 인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공장식 축산업 환경에 대한 높은 학대 민감성은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현재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이 ‘낮다’는 응답이 61%로 ‘높다’는 평가(19%) 대비 3배 가량 높았다. 효율성, 경제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기계적으로 수행되는 행위들이 농장동물의 복지를 저해시킨다는 의견이 높은 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소수인종, 여성, 아동, 동성애자, 동물을 위한 진보는 함께 진행되었다. 우리는 감각 있는 다른 존재들의 처지에 스스로를 대입해봄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고려하게 된다"고 썼다.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분명 크게 변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동물의 처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문제는 이 인식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반려동물 위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동물권에 대해서 응답자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권리가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단호하게 구분 짓는 것에서부터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법은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나 우리의 인식 속에서 어떤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남아 있다. 동물실험에 대해서도 인간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시각이 나타난다. 이는 보편적인 동물권이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에 도입되기 위해선 법과 제도의 마련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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