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근로 시간 단위 조정...주 최대 69시간 노동
윤석열 대통령 “인기 없어도 반드시 추진” 의지 표명
“자율권 빙자한 장시간 노동 체제 회귀” 노동계 비판
[한국뉴스투데이] 고용노동부가 발족한 미래노동연구회(이하 연구회)가 기존 정부 기조에 따른 근로·임금 체계 개편 권고문을 발표했다. 특히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권고문을 당정이 적극적으로 수용해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장시간 노동 체제로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도 빗발치고 있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
지난 12일 연구회는 5개월간의 논의 끝에 최종 권고문을 발표했다. 연구회는 지난 6월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7월 18일 발족한 전문가 논의 기구다. 연구회의 권고문은 정부안으로 대부분 수용될 예정인 만큼,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노동 개혁’의 구체 계획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권고문에는 특히 그간 정부가 추진해온 근로 시간 개편안이 포함됐다. 우선 연구회는 연장 근로 시간의 관리 단위를 주·월·분위·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주52시간제는 일주일을 기준으로 기본 근로 시간은 40시간을, 연장 근로 시간은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주일 최대 총 근로 시간은 52시간이며 한 달 기준 최대 연장 근로 시간도 52시간(12시간×월 평균 4.345주)이다.
그런데 연장 근로 시간을 월 단위로 설정할 경우, 한 달 기준 52시간을 넘기지만 않으면 한 주에 몰아 근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에 정부 발표 초기에는 일주일 기본 근로 시간 40시간에 월 최대 연장 근로 시간인 52시간을 몰아 사용하면 한 주에 최대 92시간 근무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 정책 등을 마련할 것이며 92시간 근무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인 경우라고 해명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시간을 보장하게 하고, 현행 근로기준법이 8시간마다 1시간, 4시간마다 30분씩 쉬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하루 근무 시간은 최대 11시간 30분을 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한 근로기준법은 일주일 하루 이상의 휴일 역시 보장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주 6일 근무를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일주일 최대 근무 시간은 92시간이 아니라 69시간이라는 것이 고용노동부와 연구회의 설명이다. 연구회 측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단위를 개편하고, 연장 근로는 현행과 같이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하는 만큼 주 69시간 근무 역시 빈번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다만 관리 단위가 월뿐만 아니라 분기·반기·연 단위로 길어짐에 따라 장시간 근로 부담이 커지므로, 연구회는 단위에 따라 연장 근로 시간을 비례적으로 감축할 것을 권고했다. 분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90%, 반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80%, 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70% 수준으로 감축하는 식이다.
아울러 연구회는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가 젊은 세대의 신규 채용 기회를 제약할 뿐 아니라 중·고령의 고용 유지를 위해서도 부정적이라며, 개인의 직무나 능력에 따른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권고문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전 업종서 3개월 이내로 확대 ▲야간근로자 개념 구체화 및 보호 방안 마련 ▲근로 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60세 이상 계속 고용 법제 마련 논의 등을 ▲임금 실태 분석을 근거로 임금 차별 해소 모색하는 ‘상생임금위원회’ 설치 등이 담겼다.
정부 추진 의지 강경
이러한 연구회의 권고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나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 대동소이하다.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연구회의 권고안을 언급하며 “권고 내용을 토대로 조속히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노동 문제가 정쟁과 정치적 문제로 흘러버리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한다. 개혁이라고 하는 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개편안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수요에 따른 유연성 ▲노동 시장에서의 공정성 ▲직장 내 안전성 ▲노사관계 안정성 등을 4개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1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연구회 연구진들을 만나 “권고문에 근로 시간 단축, 건강권 보호,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개혁과제들이 균형감 있게 제안됐다. 권고문을 최대한 존중해 노동시장 개혁을 신속히 추진해가겠다”며, 임금 및 근로 시간 개혁과제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야당 반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12일 권고안을 두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체계가 고착화된 현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4.2%로 대부분의 사업장에 노조도 없는 현실,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말뿐인 노동 시간 자율선택권 확대는 무의미하다”며 “노사 선택권을 빙자한 장시간 노동 체제로의 회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연구회의 권고안은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권보다는 노동 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을 확대시켜 유연한 장시간 노동 체제로 귀결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1일·1주 노동시간 최대 상한의 엄격한 규제, 최소휴식시간제 전면 도입 등 장시간 노동 남용을 규제할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역시 15일 논평을 통해 “대통령이 말한 노동개혁 방향은 진단은 맞았을지 몰라도 방향은 결국 개악”이라며 “허울뿐인 시간 선택권을 내세웠다. 대기업·원청 중심 이윤 독식 체제를 바꿀 생각은 없이 임금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직무성과급제의 도입, 파견제 확대와 대체근로허용, 주휴수당 최저임금 등 노동 개악에 대한 큰 그림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노총은 “공정한 임금과 자유로운 노동 시간을 위해 노사자율을 얘기한다. 한국의 현실에서 노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교섭하고 선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존재하는 노동조합도 무력화 시키며 부문근로대표제 등을 내세우는 것이 과연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발동되리라 믿느냐”며 “윤석열 정부는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혐오에 기반한 역대 최악의 반노동 정권이다. 개혁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연구회의 권고안과 개혁 과제 대부분 법 개정 사안을 담고 있는 만큼 정책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근로기준법 개정 과정에서 여야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발표 이후 야당 인사들은 잇따라 우려를 드러냈다.
가령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노동을 개혁하겠다는 건지 국민들을 과로사로 내몰겠다는 건지 걱정이 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국가였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를 일부 정착시키면서 연 200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1900시간대까지 낮췄는데, 역사의 시계를 다시 뒤로 돌리겠다고 하니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더 심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만큼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