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 미국 반도체법, 한국과 윈윈할 수 있을까
【글로벌경제】 미국 반도체법, 한국과 윈윈할 수 있을까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3.05.0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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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의존 우려
바이든 대통령 "중국 견제 아니고 한국과는 윈윈" 강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법과 관련해 한국과의 윈윈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법과 관련해 한국과의 윈윈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한국뉴스투데이] 미국이 반도체산업 분야에서 중국 등 동아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밀어붙인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이하 반도체법)의 입법 배경이 또 한번 주목된다. 반도체법 입법 배경으로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동아시아에 대한 의존을 우려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반도체법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며 한국과는 윈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발표된 세부내용을 면밀히 살표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반도체법이 제정된 이유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표한 ‘반도체법 규정·시행 관련 자주 하는 질문’(FAQ)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과거 1960~1970년대에는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했지만 1990년에 들어 미국의 점유율은 약 36%까지 떨어졌고 2020년에는 약 10%까지 떨어졌다. 

이에 미국 의원들은 반도체 생산에 있어 동아시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공급망이 취약한 점을 우려해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반도체 생산 시설 건설이나 운영에 있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그래서 그간 반도체 생산 기점이 동아시아로 옮겨진 상태다. 하지만 미국으로써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무역 분쟁이나 자연 재해, 무력 충돌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반도체 제조 중단과 운송 차질 등의 잠재적 위험에 노출됐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미국 내 산업까지 타격을 받았다. 

반도체 생산 및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지위가 내려가는 동안 중국의 산업이나 기술 경쟁력 향상이 가져올 경제적, 군사적 영향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21 회계연도 국방수법권(NDAA) 예산과 지난해 반도체법 제정을 통해 각종 보조금을 지급, 연구개발(R&D)를 지원하게 됐다. 보고서만 봐도 자국의 위치를 우려하는 동시에 중국 등 동아시아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읽힌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조금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질문을 받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반도체법을 두고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확대를 제한한 정책이 동맹인 한국에도 피해를 주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중국에 피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급망이 취약해져 미국의 산업이 영향을 받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반도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반도체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법으로 ‘미국에서 상당한 경제 성장을 창출하고 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한국의 SK뿐 아니라 삼성과 다른 산업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어 윈윈(win win)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법 세부 사안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반도체법이 우리에게도 윈윈일까. 윈윈 여부를 지난 2월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법 세부 내용을 통해 추정해봤다. 미국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해 390억달러, 연구 및 개발 110억달러, 국방 관련 반도체칩 제조에 20억달러 등 총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같은 지원보조금을 받으려면 꽤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한다.

먼저 보조금을 받은 모든 반도체 기업은 주가를 올리기 위한 자사주 매입이 금지된다. 또, 기업들은 미국의 군사용 반도체 공급이나 거대 인프라 공급 등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1억5000만달러(2000억원) 이상의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합의된 초과 이익을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내부 현금 흐름과 내부 수익률, 수익성 지표 등 모든 재무건정성을 미국 정부에 입증해야하고 환경 규제 등 중간 점검도 수시로 받아야 한다.

미국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내용은 재무적인 것만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과 가동률, 수율(전체 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 연도별 생산량,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 소재별 비용, 소모품 비용, 공장 운영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공공요금, 개발 비용 등 생산과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데이터 대부분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지역사회와 협의해 10년간 10만명 이상의 새로운 기술자를 배출해야 하고 경제적 약자를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 철강 등 건설 자재는 미국산을 써야 하고 미국 행정법에 따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직원 등 노동자에 대한 보육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향후 10년간 반도체 생산 설비를 건설해서는 안되고 기술 라이선스 공유와 공동연구 등도 모두 금지된다. 

이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지급된 보조금은 모조리 회수된다. 즉, 기업들은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재무 건정성과 사업성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정기적인 점검을 받는다. 합의된 것보다 돈을 많이 벌면 미국 정부에 내놔야 한다. 그 와중에 (중국 등 우려 국가를 배제한)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환경 규제 등도 통과해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노조와 지역사회와 협의해 인력을 운용하고 이같은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보조금을 모두 뱉어내야 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한미회담 성과 중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과 관련해서 양국 정상이 이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기재부는 한미회담 성과 중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과 관련해서 양국 정상이 이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정상회담서 우리 기업 입장 반영 합의?

기업들 입장에서 보조금은 반갑지만 까다로운 세부 조건을 보면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 설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와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수익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반가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이같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사업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고 진출 자체가 어려울 수 있어 우리 정부가 나서 조금이라도 완화된 조정을 해주길 기대하는것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 성과가 기업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의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0일 이번 방미 성과를 두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핵심기술을 위한 상호 호혜적인 공급망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에 양국은 우리의 메모리반도체와 미국의 반도체 장비를 바탕으로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양국이 차세대 반도체·첨단 패키징·첨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3대 분야와 관련한 연구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간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신설해 반도체·배터리·바이오·퀀텀·인공지능(AI) 등 분야의 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등 상호 협력을 구축할 계획이라 밝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과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이 이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했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기재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투자와 사업 활동에 ‘특별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강조하며 IRA나 반도체법 인센티브 집행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것이라 말했는데 미국이 이런 기대에 따라 움직일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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