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알아야 할 악(惡)의 평범성
평범한 사람도 생각하지 않으면 악인이 될 수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
윗사람이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할까? 부하의 양심을 지켜주는 조직문화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
「1960년 5월 11일 저녁 6시 30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시골길. 아이히만은 늘 하던 대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하차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 사람이 달려와 그를 대기하던 차에 싣고 떠났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었다. 특히,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의 이동, 수용, 학살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었다.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숨어지냈다. 15년간 그를 쫓던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를 납치해서 이스라엘 법정에 세웠다.
재판이 시작되자 세계의 이목이 아이히만에게 집중되었다. 법정에 입장한 아이히만의 모습이 TV에 중계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죽인 악인은 우락부락하고 괴물처럼 생겼을 거로 생각했는데 법정에 서 있는 아이히만은 너무나 달랐다. 그는 우리 이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한나 아렌트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나치 법률 체제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공무원으로서 복종하는 것이 의무였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공무원으로서 복종하며 열심히 일했을 뿐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나름 합리적인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생각의 무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 이런 점에서 악의 평범성의 특징이 있다. 생각의 무능이 괴물을 만들 수 있으며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존재한다.”
윗사람이 시키면 무조건 따라야 할까? 부하의 양심을 지켜주는 조직문화!
1942년 1월, 반제회의라고 불리는 독일 국가 차관회의에 아이히만이 서기 자격으로 참여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아이히만이 존경하던 권력의 핵심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 정책을 추방과 수용에서 학살로 변경했다. ‘최종 해결책’이라고 불린 이 계획은 유대인들을 학살센터로 이동시켜서 그들 중 힘센 사람들은 사역과 학살장치를 가동하게 하고 모든 다른 사람들은 즉각 처형하는 계획이었다.
아이히만은 추방과 수용정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대량학살 계획 앞에서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양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위층의 대량학살에 대한 거리낌 없는 표현과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며 그의 양심은 권위에 복종하고 말았다. 자신을 스스로 ‘본디오 빌라도’에 비교하면서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양심이 자기합리화로 포장되는 순간 그는 유대인 대량학살 전문가가 되어 악역을 수행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해!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생각은 내가 하고 넌 행동만 하면 돼”
조직의 현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상사가 있다면 그 조직은 앞날이 훤하다. 이런 상사의 잘못된 가치관도 문제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부하직원도 문제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지시된 명령은 생각 없이 실행하는 기계의 부품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평범한 당신도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악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생각이 무뎌졌다고 느껴지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성찰을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살려내야 숨어있던 악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
1961년 예일대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라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징벌에 대한 학습효과 측정’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선생의 역할을 맡았고 학생 역할은 연극배우를 고용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학생이 질문에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15볼트씩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최고 450볼트(사망할 수 있음)까지 올릴 수 있었다. 밀그램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전압을 최대치로 올릴 것을 강요했다. 실험전 밀그램 교수는 참가자들이 450볼트의 전압까지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65%의 참가자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450볼트에 사람이 죽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양심을 저버리게 만든 것이다. 밀그램 교수는 이를 ‘권위와 명령에 따른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위 실험에서 양심은 타자의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을 때 책임의 윤리를 실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윗사람이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양심과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는 양심은 불안정한 업무처리와 기회만 되면 이직하려는 생각만 키우게 만든다. 이런 조직에서는 누구도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언제나 소통의 창을 열어두어야 한다. 부하가 양심을 저버리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조직문화에서 ‘갑질’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소통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조직 속에서 제2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라면 왜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다면 분명히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