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의 반란
우리는 예쁜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다.
집안을 둘러봐도 평생을 쓰는 물건이란 건 발견하기가 어렵다. 옷이나 신발처럼 당연히 마음에 들어 산 물건들을 포함해서, 언젠가는 버려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화장품이나 향수 같은 것들은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에 끌려 사게 되는 물건이 대표적인 예쁜 쓰레기가 되는 제품들이다. 어떤 것은 다 쓰고도 용기가 예뻐서 버리기 아까울 정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한다면 디자인을 더욱 고려해서 물건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 자체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예쁜 것을 갖게 되었을 때의 기쁨 역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빼놓을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바로 세제나 샴푸, 보디워시 등 매일같이 사용하는 것들이다.
예뻐서 사는 것은 아니라 해도 끊임없이 플라스틱 용기가 쓰레기가 되어 나간다.
고대부터 이어진 비누의 역사는 액상 형태로 발전하면서 편리함을 극대화 시켰다. 한때는 비누가 사치품이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선택의 폭이 무궁무진한 제품이 되었다.
단순한 세척의 의미를 넘어 미용의 용도로 사용되면서 그 시장은 확대되고 성장했다. 소비자는 피부 상태에 맞게 다양한 성분을 선택할 수도 있고, 취향에 맞는 향을 고를 수도 있다. 그런 시장의 흐름 속에서 1990년대부터는 폼클렌징이 인기를 끌었고, 고급 샴푸나 린스, 트리트먼트 등 수많은 액상 제품들이 플라스틱 통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의 편리함과 풍부한 거품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시 비누의 시대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친환경에 관한 이슈가 대두되는 열기 속에서, 화학성분을 줄이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일환으로 비누 사용하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소비 트랜드에 맞게 주방 세제를 대신할 워싱바나 샴푸바 등 미용 비누뿐만 아닌 고체형 바 형태의 제품들을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 중이다.명품 브랜드에서는 몇만 원대 이상의 고가의 고체형 비누도 판매하고 있다.
모든 걸 비누 하나로 해결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비누의 가격대와 그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제외한다면 고체비누가 가진 장점은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이란 것도 플라스틱에 익숙해진 습관일 뿐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인가에 길들여진 걸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플라스틱과 이별을 준비해야만 한다.
잠시 빌려 쓰는 이곳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머물다 가는 것 치고는 이곳을 너무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을 진작에 깨닫고, 행동하며, 지켜내고자 애쓰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믿고 희망을 품어본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이것이 당신 소유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잠시 이것을 갖고 있을 뿐이다. 주인이 잠시 모자를 벗어 잠시 벽에 걸어 놓는다고 해서, 그 모자가 벽의 소유란 말인가?"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