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배송의 가치, 슬로우커머스
배송 노동자 사지로 내몬 퀵커머스 경쟁 빠른 배송보다 품질‧안전 가치소비 추구
[한국뉴스투데이] 소비자 편의를 극대화하려는 쇼핑 방식이 만들어낸 ‘퀵커머스’ 경쟁에 ‘슬로우커머스’가 대항마로 나섰다. 배송 노동자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빠른 배송’ 대신 소비자와 노동자의 상생을 도모하는 ‘느린 배송’을 선택하는 소비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배송 노동자 사지로 내몬 퀵커머스 경쟁
퀵커머스란 빠른(Quick)과 상거래(Commerce)의 합성어로, 온라인(모바일)에서 상품을 주문받아 거점 배송망을 통해 15분에서 2시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다.
퀵커머스는 음식 배달 중개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2019년 후반 B마트 사업을 시작하며 탄생했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언택트 문화 확산을 기반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독일 음식 배달 서비스 기업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 퀵커머스 시장 규모를 2020년 3,500억 원에서 2025년엔 5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실제 퀵커머스는 보다 빠르고 편한 소비를 원하는 대중 심리에 부합하며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문제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다는 목표가 온전히 노동자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고로 드러난 ‘빠른 배송’ 서비스의 민낯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김동식 소방령이 순직한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 사고에서 쿠팡은 화재 당일 김범석 창업자의 국내법인 이사직 사임을 발표하고 사과는 사고 사흘 만에 하는 무책임한 대처로 비난을 샀다.
이 과정에서 지난 1년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9명이 과로사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은 사실도 새삼 조명받았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 중 배송·물류 노동자 처우가 그나마 낫다고 평가받던 쿠팡의 잇따른 악재는 쿠팡이 선도해온 '빠른 배송' 경쟁에 근본적 회의를 불렀다.
이어 쿠팡뿐만 아니라 퀵커머스 경쟁에 뛰어든 업체 대부분이 유통업계 근로자들을 위험한 근무 환경으로 몰아넣은 사실도 드러났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 근로자들이 쏟아졌고, 안타까운 사망 사고도 잇따라 발생했다.
◆빠른 배송보다 품질‧안전 가치소비 추구
‘빠른 배송’에 대한 실망감은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만이 아니라 소비문화 자체를 자성하는 움직임까지 이어졌다. 소비자가 변화하니 이에 맞춰 ‘느린 배송’을 장점으로 내세운 기업들이 자연스레 등장했다.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업체의 생산 일정이나 배송 상황에 맞게 미리 주문하거나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구매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슬로우커머스는 퀵커머스와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을 갖고 있다. ‘신속함’이 최우선 가치인 배송 서비스에서 ‘느긋함’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몰 퍼밀의 ‘달구지 배송’ 서비스다. ‘달구지 배송’은 소비자가 주문한 채소나 과일이 최상 품질에 이르기까지 기다렸다가 배달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조금 느리더라도 품질을 중요시하는 이들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생산자 입장에서도 배송 시간에 쫓기지 않고 최상의 상품을 공급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은 상황이다.
크라우드 펀딩 방식의 대표주자들은 와디즈, 텀블벅, 카카오메이커스 등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개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와디즈의 펀딩 금액은 2019년 1,435억 원에서 지난해 2,000억 원으로 40%가량 늘었다.
또한, ‘명품 직구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트렌비와 글로벌 전자상거래 아마존에서 인기가 높은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 멜릭서 등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성장한 기업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선주문 후제작’을 고수하는 핸드메이드 제품 쇼핑몰 아이디어스도 슬로우커머스로 인기몰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