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폭행·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대법 “국가 배상 책임 없다”
“고의적인 은폐 시도로 볼 근거 부족”
[한국뉴스투데이] 육군 제28사단에서 선임들의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끝에 숨진 윤승주 일병 사건에 관련해 대법원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4일 군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지난달 29일 윤 일병 유족이 선임 이 모 씨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이 씨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은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대법원이 별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원심판결을 확정하는 제도다.
앞서 육군 제28사단에서 근무하던 윤 일병은 지난 2013년 말부터 약 4개월에 걸쳐 당시 병장이었던 이 씨를 비롯해 병장 하 모 씨, 상병이었던 이 모 씨와 지 모 씨 등에게 가혹행위와 집단 폭행을 당한 뒤 2014년 4월 숨졌다.
그런데 윤 일병의 사망 직후 군 당국은 윤 일병이 선임병들과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질식해 숨졌다며 사인을 ‘기도 폐쇄에 의한 질식사’라고 공표했고, 군 검찰 역시 가해자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며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이후 가해자들의 폭행 및 가혹 행위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군 검찰은 뒤늦게 이들의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했다. 이에 2016년 대법원은 살인 혐의를 받는 주범인 이 씨에 징역 40년을, 상해치사죄가 적용된 나머지 공범들에 징역 5~7년을 확정했다.
이에 유족은 육군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지난 2017년 4월 이 씨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그런데 1·2심은 모두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1심은 “군 검찰이 사인을 고의로 은폐했다고 보기 부족하다. 군 검찰은 그때까지의 조사를 바탕으로 가해자에게 상해치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 기소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고, 지난 6월 2심도 “살인에 대한 고의를 확신하기 어려웠던 사건 초기에 가해자들을 상해치사죄로 기소한 것을 부실수사나 은폐 시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 씨의 배상책임은 인정돼 1심은 윤 일병의 부모에게 각 2억여 원을, 윤 일병의 누나 2명에 각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역시 이같이 판결했으나 이자 지급 시점을 1심보다 한 달 앞당겼다.
이날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는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은 끝끝내 진실을 외면했다. 군에서는 국방부의 제 식구 감싸기로 승주의 죽음을 조작하려 했던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지만 민간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판사라는 사람들이 기록도 보지 않고 재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아 줄 줄 알았는데 심리도 해보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매형 김 모 씨는 “사법부가 외면한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판 과정을 거치며 확보한 자료를 공개해 모두가 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다른 방법을 통해 진실 규명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18년부터 윤 일병 사건 관련 조사를 시작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위원회가 대법원과 다른 판단을 한다면 그 또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면 재심에 대한 부분도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