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COP27, 기후위기 피해 보상 기금 마련 합의...실효성 의문
기후위기로 인한 개도국 피해 보상 기금 위원회 출범 이외 구체적 사안 모두 미정 석탄 외 화석 연료 사용 중단도 합의 결렬
[한국뉴스투데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7)가 기후위기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 마련에 합의에 이르며 폐막했다. 다만 해당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안은 모두 내년에 결정하는 것으로 미뤄졌고, 화석 연료 감축도 기존 합의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 방안은 마련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 합의
지난 20일 오전 10시경(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COP27이 폐막했다.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는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 ▲모든 화석연료 사용 단계적 중단 ▲온도 상승 1.5℃ 제한 목표 유지 ▲미국과 중국의 구체적 행보 결정 등이었다.
이번 총회에는 198개 당사국과 시민단체 및 산업계에서 3만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은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관계부처 공무원 및 전문가로 구성한 정부대표단이 참석했고, 정상세션에는 나경원 기후환경 대사가 대통령 특사로 참석했다.
당초 폐막일은 18일이었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 마련 문제를 두고 당사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2일가량 연장됐다. 긴 논쟁 끝에 이날 COP27 의장인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총회 결정문이 당사국 합의로 채택됐다고 밝혔다.
해당 합의문에서 당사국들은 “기후변화의 악영향은 주민의 비자발적 이주, 문화재 파괴 등 엄청난 경제적·비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면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충분하고 효과적인 대응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며 기금 조성 취지에 모두 동의했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 최빈국 연합을 대변한 셰리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 장관 역시 “이번 합의는 기후 취약국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분투했고 오늘 그 여정은 첫 긍정적 이정표를 이뤄냈다”며 반겼다.
기후 불평등 인정 의의
파키스탄은 올여름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침수되는 대홍수를 겪으며 최소 1700여 명의 국민을 잃었다. 파키스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0.4% 수준이다. 반면 글로벌탄소프로젝트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가량은 미국에서 발생하고, 전체 배출의 80%는 경제력 상위 20개 국가에서 발생한다.
이에 지난 9월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은 기후위기로 인해 재난 수준이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들며 “우리의 요구는 자선이나 구호가 아니라 정의다. 파키스탄 국민 3300만 명이 큰 나라들의 산업화 대가를 목숨과 삶으로 치르고 있다”고 기후 불평등 해소를 촉구한 바 있다.
그간 개도국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금 마련과 국제 기구 조성을 촉구해왔다. 지난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COP16 총회 당시 선진국들은 2011년부터 10년간 매년 개도국에 보조금을 지급해 2020년까지 총 1000억 달러를 개도국에 공여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목표 연도인 2020년 보조금 공여는 833억 달러에 그쳤고 기한은 2025년으로 연장됐다. 이에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약속 불이행을 비판하며 당초 약속한 공여 규모도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해왔다. 아울러 해당 보조금은 기후위기에 대한 개도국의 적응을 돕고 피해를 완화한다는 취지로, 기후위기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 역시 받아왔다.
이에 지난해 총회에서도 개도국들은 손실과 피해 기금·기구 조성을 촉구했고, 대다수 국가는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별도 조성에 반대하며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에 이번 COP27에서의 합의는 선진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별도 기금과 기구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체 사안 미정...실효성 의문
그러나 이번 COP27에서도 기금 마련을 위한 준비위원회 설치만이 합의됐을 뿐 구체적인 사안은 모두 결정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재원 조달 방안, 재원 운용 방식, 피해 보상 기준, 피해 대상 국가 등은 모두 정해지지 않으면서 내년 11월에 열리는 COP28로 미뤄졌다.
지난 6월 55개 기후변화 취약국들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기후 관련 손실 총액은 약 740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원을 어떤 국가에서 제공할 것인지가 가장 큰 쟁점이 돼왔다. 나아가 선진국들이 여전히 기금 마련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일 뿐이라는 입장을 기본으로 두고 있는 만큼 추후에도 재원 부담 주체에 관련한 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또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의 내용은 유지됐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 방안도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아울러 천연가스 등 석탄 외 화석 연료 사용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합의된 석탄 발전 단계적 감축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COP26 이후 지난 1년간 화석연료 사용량은 1%가량 늘었다. 이에 선진국 및 군소도서국 협상그룹(AOIS)는 이번 총회에서 석탄 발전의 단계적 축소, 화석연료 보조금 단계적 철폐, 2025년까지 탄소배출 정점 달성 등을 요구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못했다.
손실과 피해 기금에서 한국의 재원 부담 가능성은 낮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지난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과 지난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기준으로 선진국을 정하는데 당시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었던 만큼 비용 부담 의무가 없다. 다만 최근 신흥 개도국인 중국도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중국이 기금 조성에 참여할 경우 한국에 대한 부담 압박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기후위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영국, 네덜란드, 북유럽 5개국을 합친 양과 비슷하고,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17위에 달해 하위 129개국의 누적 배출량을 합친 양과 같다. 이에 환경시민단체들은 한국 역시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적극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등 환경 정책의 목표 하향 조정 및 예산 감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