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에서 받는 스트레스
한 명상원에 잘 나가는 은행원이 찾아왔다.
이 은행원은 남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을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직업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벗어난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명상을 하면서 자신에게 온 스트레스가 과중한 업무 때문이 아니라 은행 일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쌓아왔던 경력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평소 동경했던 정원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주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행복해했다고 한다.
이 은행원의 일화를 계기로 요즘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생각해본다. 처음엔 나도 은행원처럼 근무환경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마음이 영 맞지 않고, 일하는 방식도 나랑 달라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겉으로 들어난 것일 뿐이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이곳의 일이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길 나가면 딱히 다른 일을 구할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예전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프리랜서의 특성상 한 곳에 오래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고 흠이 될 것도 없다. 여러 방송국으로, 여러 피디들로 옮겨 다니며 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때문에 굳이 한 곳을 연연할 필요가 없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구하면 됐다. 일하면서 받을 스트레스 자체가 거의 없었다. 위에서 말하는 은행원처럼 큰 용기를 낼 필요도 없었다. 말하자면 선택지는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를 부르는 사람들의 손짓이 줄어들자, 언젠가부터 이 프로그램이 나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다. 동시에 자신감도 떨어졌다.
누군가는 이제는 피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 상황에서 다시 피한다면 패배자가 될 것이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보면 미래에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며 위로하기도 한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곳을 계속 다녀야 할까? 아니면 스트레스를 피해 이곳을 떠나야 할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을까?
나의 스트레스는 지금 이 길이 마지막이라고 믿기 때문에 찾아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견뎌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그럼, 단순하게 예전처럼 이 길이 외길이 아니라고 믿으면 되지 않을까? 이곳이 아니라도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면 견뎌야 할 것들도 줄어들고, 스트레스도 사라지지 않을까? 꼭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버리고, 이 곳이 아니라도 나를 부르는 손짓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혹여나 받더라도 가볍게 치부해버릴 수도…….
어차피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 그 길이 외길일 확률은 반반. 굳이 50%의 확률을 100%라 확신하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받았던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은행원의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이 과도한 업무환경에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스트레스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이 일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나의 그 생각 때문에.
하지만,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생각을 멈추면 이 일은 나의 마지막 일이 아닌 것이 된다. 혹여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다시 나를 찾는 곳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나를 힘들게 하던 관계나 스트레스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큰 용기를 낼 필요도 없다.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어수선한 마음이 맑아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