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확보 입법 한창...중국 대응 주목
CRMA·IRA·공급망 3법 등 각국 배터리 공급망 확보 위한 규제 마련
[한국뉴스투데이] 현재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고 EU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도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공급망 기본법)과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자원안보법),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소부장 특별법) 등 공급망 3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각국의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CRMA·IRA, 중국 의존도 낮추고 자국 위주 개편
지난 3월 EU는 전기차와 배터리 등 미래 핵심 산업 공급망을 지원하기 위해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을 발표했다. CRMA는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희토류, 코발트, 니켈과 리튬 등의 채굴, 제련, 재활용 비율을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 등 특정 국가 수입 의존도를 65% 이하로 줄이고 유럽 내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유럽 내에서 전기차 제조를 위한 소재 확보와 부품 조달, 조립 등이 이뤄져야 보조금 혜택을 받고 법안이 정한 패널티를 피할 수 있다.
탄소중립산업법은 태양광과 배터리, 바이오가스 등 탄소중립을 위한 제조 역량을 키우는 것이 골자로 EU 연간 수요의 40% 수준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탄소중립 기술 프로젝트의 허가 기간을 파격적으로 단축하고 탄소포집 저장기술의 개발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최근에는 지속가능한배터리법(배터리법)이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배터리법은 휴대폰, 전기차 등에 탑재돼 EU 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배터리의 공급망과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것이 골자로 배터리 생산 시 재활용 자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폐배터리에서 발생하는 핵심 원재료의 의무 수거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EU에 앞서 미국은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한발 일찍 배터리 공급망 확대에 나선 상태다. IRA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의료비를 지원하고 법인세를 인상하는 등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법안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전기차 제조에서 중국 등 우려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 의존도를 낮춰 중국을 배제하면서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는데 있다. IRA에 따라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를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또, 배터리의 주요 부품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비율의 50%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돼야 한다. 특히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이 지급된다.
CRMA와 IRA의 법안을 마련한 궁극적인 이유는 기후환경에 대응하고 미래의 핵심 산업인 전기차와 배터리의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CRMA와 IRA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중국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현재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의 대부분이 중국 등 제3국에서 공급되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핵심 중 하나인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에서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밀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각국은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공급망 3법 입법 추진 중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공급망 기본법)과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자원안보법),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소부장 특별법) 등 공급망 3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빠르게 속도를 내는 것은 소부장 특별법이다. 지난달 25일 소부장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급망 3법의 신호탄을 올렸다.
소부장 특별법은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다. 소재와 부품, 장비의 자체 기술력을 키우고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해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이번 개정안에는 소부장 품목 중 중국 등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높거나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을 공급망 안정품목으로 선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정부가 안정품목을 검토해 기업에 재고 확대를 권고하거나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은 비상시 정부 명령에 따라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는 품목을 국내로 반입해야 한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공급망 기본법은 국가 전반의 공급망 안정화 및 위기관리를 최초로 제도화하기 위함이다. 이에 대통령실 소속으로 공급망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인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현재 부처별로 산재된 공급망 관련 정책과 계획을 연계해 기재부가 총괄·조정 기능 및 경제 전반을 맡고 소관 부처는 분야별 전문성 및 실제 안정화 역할을 수행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 경제에 필수적인 경제안보 품목·서비스를 지정하고 기여하는 민간기업을 안정화 선도사업자로 인정해 재정 지원 및 세제 지원, 공급망안정화기금을 통해 안정화를 도모하게 된다.
자원안보법은 지난해 12월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자원안보의 개념과 법위를 확대하고 새로운 자원안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국-중국의 패권 전쟁 등으로 공급망이 불안해지고 일부 국가에 생산이 몰려있는 현재 상황에서 핵심광물 등 자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공급과 수요의 관리, 에너지 간 유기적 연계를 통해 종합적 위기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급망 3법은 중국 등을 견제해 공급망을 확보하자는 내용이 공통으로 포함됐다.
중국 견제 법안에 중국 기업들 활로 모색
이처럼 여러 국가가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의 배터리 공급망 법안을 추진하면서 중국 기업들은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사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중국은 상당한 위치에 올라있다. 빌 포드 주니어 포드자동차 회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전기차 부문에서 중국과 경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중국은 매우 빠르게 전기차를 개발했고, 대량 생산했으며 수출까지 하고 있어 조만간 미국까지 진출할 것이라 평가했다. 포드 회장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과 배터리 점유율에 고스란이 드러난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중국의 비야디가 187만대로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많이 전기차를 팔았다. 2위는 테슬라(미국)가 131만4000만대, 3위 상하이자동차(중국) 97만8000만대, 4위 폭스바겐(독일) 81만5000만대, 5위 지리자동차(중국) 64만6000만대로 상위 5위 기업 중 중국 기업이 3곳이나 포함돼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의 CATL(닝더스다이)이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 비야디, 파나소닉, SK온, 삼성SDI 등으로 나타났다.
CATL는 지난 2월 미국 포드와 함께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IRA까지 마련했지만 포드는 CATL과 손을 잡았다. IRA 규제를 피하기 위해 포드와 CATL는 지분을 나누지 않고 포드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가운데 CATL이 기술만 제공하는 라이선스 방식을 택했다. 테슬라 역시 전기차 시장에서의 중국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CATL와 미국 내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의 최대 주주인 중국 배터리 기업 궈시안(고션 하이테크)도 미국 미시간주에 23억6000만달러(한화 3조4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생산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IRA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의 세계 진출은 더욱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려는 국가들의 입법 추진이 한창인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각국의 규제를 피해 진출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확보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