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한강] 한국문학계의 쾌거, 황금기 찾아오나

‘한강 신드롬’, 국민 55% “한강 작품 읽을 것” 한국 문학 관심 확대, 판매량 전년 대비 49.3%↑ 노벨문학상 이어 톨스토이문학상, 한국 문학 호재

2024-10-26     박상미 기자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한강 작가 기자회견 중)
소설가 한강이 지난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수상이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의 나라가 됐다.

▲서울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출판계에 춘풍이 불고 있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이어 한국계 작가들의 해외 문학상 소식이 이어져 한국 문학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포스트 한강에 주목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러시아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계미국인 작가 김주혜가 소설 ‘작은 당의 야수들’(2021)로 톨스토이문학상이라 불리는 야스나야 폴라냐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야스나야 폴랴나상은 ‘부활’ ‘안나 카레리나’ ‘전쟁과 평화’ 등 여러 장편소설을 발표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탄생 175주년에 제정된 상이다.야스나야 폴랴나는 레프 톨스토이가 태어난 지역으로, 러시아어로 빛나는 공터라는 의미이다. 

김주혜 작가는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후에 “선배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옆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영광”이라며 “한국 문학은 그 자체로 세계적인 장점을 갖고 있으며 정이 깊고 뜨거운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범위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의 고통을 내가 느끼도록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톨스토이문학상 심사위원인 파벨 바신스키는 “호랑이는 한국 독립의 상징으로, 이 작품을 알렉시 톨스토이의 ‘갈보리로 가는 길’에 비교하겠다”고 평가했다. 알렉시 톨스토이는 레프 톨스토이의 먼 친척으로, 역시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갈보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언덕을 의미한다. 러시아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안톤 체호프, ‘닥터 지바고’를 집필한 소설가 겸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비교하기도 했다.

김주혜 작가는 1987년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9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했으며,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2016년 영국 문학 잡지 ‘그란타’에 단편소설 ‘바디 랭귀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불법적으로 강제 병합한 1917년 겨울 현재 북한 지역인 평안도의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인 사냥꾼이 우연히 일본군 대위를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여러 인물들이 조선의 독립을 일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강신드롬, 뜨거운 관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의 소설을 향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 1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앞으로 읽을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55%가 '있다'고 답했다. '읽은 적 없고 앞으로도 읽을 의향도 없다'는 응답은 24%, 이전 읽은 적 있다는 응답은 21%였다.

'앞으로 읽을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50대가 62%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60대가 61%, 40대가 59%, 30대가 54%, 70대 이상이 49% 10·20대가 41% 순이었다. '이전에 읽은 적 있다'는 응답자 중 여성이 24%로 남성(18%)보다 많았다. 주관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다. 생활수준별로 보면 상·중상층이 36%, 중층 22%, 중하층은 15%, 하층은 9%였다.

응답자들이 읽거나 추천하고 싶은 한강의 작품으로 '채식주의자'가 22%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소년이 온다'가 21%, '흰'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각각 1.3%와 1.1%를 기록했다. '채식주의자'는 지난 2016년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소년이 온다'는 지난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해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흰'은 지난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는 작가 개인을 넘어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다. 응답자들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작가 개인의 영예'(31%), '국가의 영예'(30%), '둘 다'(35%)로 보는 각 질문에 비슷하게 답했다. 연령대별로는 연령이 낮을수록 개인적(20대 60%, 30대 48%; 70대 이상 12%) 차원으로 여겼고, 40대 이상에서는 10명 중 7~8명이 국가적 의미를 결부했다.

출판업계, 황금기 기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의 소설은 예약 판매로도 구하기 힘든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한강의 작품 외에도 한강이 언급한 책, 최근 읽은 것으로 알려진 책까지 덩달아 한국문학의 판매량이 늘면서 서점가가 들썩이는 모양새다.

스웨덴 한림원과 한강의 전화 인터뷰에서 언급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작년 동기보다 판매가 35배 증가했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추천한 메리 올리버 산문집 '긴 호흡'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도 큰 폭으로 판매가 늘었다
한강이 최근 읽었다고 밝힌 조해진 소설 '빛과 멜로디'는 138.9%, 김애란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93.4% 판매가 증가했다.

▲‘2024년

한강이 2014년 공개한 '내 인생의 책 5권'도 주목받고 있다. 임철우 단편 소설집 '아버지의 땅', 파스테르나크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 보르헤르트의 유작 '이별 없는 세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판화가 카테리네 크라머가 쓴 평전 '케테 콜비츠'의 총판매량은 작년 동기보다 20배 증가했다.
18일 예스24에 따르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0일부터 16일까지 소설·시·희곡 분야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작년 동기간에 견줘 49.3% 증가했다. 이번 조사는 한강의 작품은 제외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더불어 2024 톨스토이 문학상의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은 땅의 야수들'은 작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117배 늘었다.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로 선정된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52배 증가했다. 예스24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독자들이 다른 책들도 함께 구매하며 오랜만에 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