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2024결산] 역대급 더위, 달라진 계절 ②“대형 산불의 공포”
가뭄 다음엔 산불, 칠레·포르투갈 등 지구촌 적색경보 2022년의 악몽은 그만, 올해는 합격…“산불 안전, 이상無”
[한국뉴스투데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재난은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촌 곳곳의 일상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2024년 기후는 ‘최초’, ‘역대급’, ‘경신’이라는 키워드를 떼어 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사시사철이 온난한 기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역시 기후 위기에 있어서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역사상 최고 기온, 온열 질환으로 인한 인명 피해, 산불 공포 등 올 한 해 나라 안팎의 기후 이슈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주>
산불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표적 재해 중 하나다. 산불은 자원의 손실은 물론 화재로 인한 공기 오염, 공기 정화 역할을 하는 삼림의 소실 등 악순환의 연결 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문제다.
가뭄 이어 산불 피해
칠레는 지난 2월, 산불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칠레 국가재난예방대응청(세나프레드·Senafred)가 종합한 정보에 따르면, 2월 칠레 중부 발파라이소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최소 12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나프레드 등 당국은 이번 화재가 고온과 강풍 등의 영향으로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가 가장 컸던 비냐델마르 인근 지역에서는 산불로 인한 실종자가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당시 비냐델마르 외곽 지역을 촬영한 영상에는 동네 전체가 까맣게 그슬리고 불에 탄 자동차들이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지역 주민 카스트로바쿠에스(72)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화재라기보단 핵폭탄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라고 화재 당시 상황을 전했다.
칠레 산불의 원인 중 하나는 엘니뇨현상이다. 세나프레드에 따르면, 내륙 지역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남반구 한여름 날씨에 올해 기승을 부리는 엘니뇨현상으로 지역적으로 고온 건조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한때 시속 60㎞에 달했던 거센 바람도 불길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과학자들 역시 칠레 산불에 대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이 급증한 것과 엘니뇨가 발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칠레는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졌다. 토지와 식물이 수분을 빼앗겨 산불이 일어날 조건이 갖춰진다. 여기에 산불이 시작된 지점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는 점이 자연 발생에 무게를 실었다.
포르투갈은 지난 9월 산불로 ‘재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북부 지역에서 산불 100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지난 17일 밤 정부가 ‘재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번 산불로 최소 7명이 사망하고 가옥 수십 채가 파괴됐으며 산림과 관목지 수만 헥타르가 불에 탔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각각 진압용 헬리콥터를 보냈고 포르투갈에서는 소방관 5천명 이상이 투입됐다. 산불을 진압하던 소방관 3명이 사망했다.
야네즈 레나르치치 EU 위기관리 위원은 포르투갈의 산불이 ‘기후 붕괴의 공통적인 증거’라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의회의원(MEP)에 “실수하지 말라. 이 비극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를 위한 표준이 되고 있다.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는 대륙이며 특히 기상이변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산불은 해당 국가는 물론 지구촌 전체가 주목해야하는 문제다. EU 코페르니쿠스 대기모니터링서비스(CAMS)는 이번 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북미와 남미에서 특히 강력한 산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미국 서부·캐나다·아마존 열대우림과 판타날 습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마크 패링턴 CAMS 선임 과학자는 “올해 북미와 남미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사적으로도 전례 없는 규모였으며, 특히 볼리비아·판타날·아마존 일부 지역에서 두드러졌다”며 “캐나다의 산불도 극심했지만 다행히 지난해의 기록적인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해안을 덮친 화마
우리나라의 최근 대형 산불은 지난 2022년 봄, 울진과 삼척 등 동해안 지방의 산불이다. 2022년 3월4일부터 13일까지 계속된 이 산불은 역대급 면적과 기간을 기록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림 2만923핵타르를 태우고 213시간 43분 만에 진화가 완료되었다.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이다.
이로 인해 주택, 공장, 창고, 농축산 시설 등 총 643개 시설이 소실되었고, 3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산불의 피해를 입은 산림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금강소나무의 최대 군락지이며 국내 최고의 야생 동물서식지로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숲 생태계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
동해안 산불의 원인은 양간지풍과 겨울 가뭄으로 지적됐다. 양간지풍은 봄철 이동성 고기압에 의해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서풍으로 국지풍의 한 종류이다. 영서지방에서 공기가 태백산맥을 지나고 영동지방으로 넘어갈 때 공기가 고온 건조해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고온 건조한 강풍이 영동지방의 대형 산불이 진행되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2022년의 산불은 무엇보다 가뭄의 영향이 컸다. 당시 2021년부터 이어진 50년 만의 겨울 가뭄이 산의 나무와 풀을 심하게 마르게 한 상태였으며, 2월 중순부터 건조 주의보와 경보가 이어지면서 대기가 건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동해안 지방 강수량 또한 2022년 1월과 2월 모두 평균 4밀리미터를 밑도는 등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우리나라 산불, 올해는 ‘안전‘
올해는 산불 위험에서 안전을 확보한 해였다. 올해 산불피해 면적이 1986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행정안전부와 산림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산불조심기간 종료일인 5월 15일까지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은 73ha, 피해 건수는 175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10년간(2014년~2023년, 동기간) 발생한 산불의 평균(3,865ha, 416건) 대비 면적은 98%, 발생 건수는 58% 감소한 수치다. 특히 피해 면적은 1986년 산불통계 작성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최소 피해를 기록했다. 건당 피해 면적은 0.4ha로 최근 10년 평균(9.3ha) 대비 4% 수준으로 분석됐다.
올해 산불 주요 원인은 ▲불법소각(42건, 26%) ▲입산자 실화(失火)(31건, 20%) ▲담뱃불 실화(27건, 17%) ▲화목보일러 사용 부주의(21건, 13%) ▲작업장 부주의(10건, 6%) 등으로 집계됐다.
산불 관련성과는 지자체와 관계 기관의 공조, 지역 주민의 합작이다. 행안부는 올해 산불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함께 다양한 대책을 추진한 바 있다. 먼저 불법 소각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전년보다 8배가량 많은 약 11만 7천 톤의 영농부산물을 수거·파쇄 했다. 또 영농부산물 파쇄기 및 진화 장비 확충 등을 위해 지자체에 특별교부세 100억 원을 선제적으로 지원했다.
지자체는 ‘불법 소각산불 방지 대응반’을 구성하고, 고령 농업인 등을 대상으로 불법 소각행위에 대해 집중 홍보한 바 있다. 행안부와 산림청은 산불 신고 즉시 산림청에 내용이 전달되도록 ‘긴급신고통합시스템’을 개선하여 산불신고·접수시간을 평균 3분 이상으로 단축하고, 감시 카메라를 확대해 신속한 초동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앞으로도 정부는 관계기관 및 지자체와 긴밀한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등 산불방지에 총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