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다.
경제적 여유 뿐 아니라 병치레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
경제적 여유는 집이 있고, 현금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물질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만족에 따르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자꾸 늙어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울하고, 의욕마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도 이때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젊었을 때와는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되면
기분이 그리 썩 유쾌하진 않다.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나? 허무하기도 하고, 기운이 빠졌다.
얼마 전 대학원 동기의 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10여 년 전 방송원고 쓰기를 잠시 멈추고 대학원에 갔었다.
뒤늦게 입학을 한 거라 내가 나이 많은 축에 속했는데,
그때 알게 된 동기들 중 대학교를 막 졸업한 현역이 있었다.
그 친구를 학교 밖에서 종종 만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별로 유쾌하진 않았다.
걸핏하면 약속 몇 시간 전에 펑크를 내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만나는 장소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정하곤 했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런 것으로 불평하기엔 나잇값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같이 만나는 다른 동생들도 별다른 불평이 없어 나 역시 그럭저럭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억되었던 그 친구를 얼마 전 다시 만났다.
물론, 그때도 다시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 번이나 약속 날짜를 변경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이 친구! 참 사회생활하기 힘들겠구나. 참 이기적인 친구구나’.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나니 미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이유인즉, 이 친구는 선천적 척추측만증으로 몸이 약했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갑자기 숟가락조차 들 수 없는 고통이 오면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완화주사를 맞아야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어렸을 때는 다른 친구들도 다 그렇게 아픈 줄 알았단다.
다들 진통제를 비타민 먹듯이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줄 알았단다.
말하자면, 이 친구는 날아갈 듯한 상쾌함이 뭔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좀 덜 아프면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그 친구에겐 최상의 컨디션인 것이다.
어떻게 그런 몸 상태로 30여년을 살 수 있었는지, 1년 365일 매일 심한 몸살 같은 증상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얼마나 활기차게 보였는지...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그 친구가 어느 날 창문을 통해 바깥풍경을 보면서 자문한 적이 있었단다.
‘왜 나는 이런 몸을 가지고 있는데,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한 번도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없었기에, 신체 건강한 것도,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는 것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지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랬다. 그녀가 보는 건강함은 내가 알고 있는 건강함과 전혀 다르다.
안쓰러워하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건강함이란 고통의 정도가 어제보단 덜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약간의 체력이면 된다. 그 속에서 나름 행복의 길을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은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마음이 너무 가볍고, 종종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 친구를 보며 경제적 여유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건강 역시 어떤 보편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 친구에 비하면 지나간 내 젊은 시절을 한탄하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