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발생한 벌집 붕괴? “이상 기상의 징후”
5천년 공생 역사 위기, ‘인류 붕괴’ 경보로 봐야
[한국뉴스투데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차이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문명, 국가의 위상, 종족의 성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력이 아닌 놓여진 환경의 차이라는 의미다. 현대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미래에 살게 될 환경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눈부신 문명 발달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환경오염으로 바이러스 질병이 전 세계를 공격하며 인간의 생존권을 노리고 있다. 지구 생태계의 변화와 그로 인해 맞닥뜨리게 된 바이러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편집자주>
꽃과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은 우리에게 봄을 알려주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꿀벌의 외출을 목격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동양 꿀벌인 토종벌의 멸종 위기 소식이 전해지고, 전국 양봉농가에서는 대규모 ‘꿀벌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실종 괴현상을 뜻하는 CCD(Colony Collapse Disorder, 벌집군집붕괴현상)으로 양봉 농가에 시름이 크다.
사라진 꿀벌 176억 마리
봄은 양봉농가에게 수확의 즐거움을 꿈꾸며 힘찬 출발을 하는 시기다. 꿀 채집은 보통 3~4월에 벌통을 설치하고 9월이 되면 벌꿀을 채취한다. 봄이 되면 창고에 넣어두었던 봉판을 꺼내 벌통에 넣어두며 올해의 수확을 기대하는 활기가 넘친다. 이런 일반적인 양봉농가의 풍경이 달라졌다. 창고의 봉판이 벌통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봄의 막바지다. 봉판에 꿀을 채워줄 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꿀벌이 갑자기 동시 다발적으로 사라지는 벌집군집현상으로 인한 양봉농가의 피해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양봉농가 1만2,795곳 중 82%인 1만546곳에서 월동하던 꿀벌들이 소멸하는 피해를 입었다. 전체 153만9,522개 벌통 중 약 57.1%인 87만9,722개가 피해를 입어 약 176억 마리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약 78억 마리의 벌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꿀벌의 실종에 정치권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제정된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은 지난해 5월 발의된 이개호(더불어민주당)안, 같은 해 9월 발의된 윤준병(민주당)안, 올해 4월 발의된 임호선(민주당)안, 이달 3일 발의된 김태호(국민의힘)안 등 4건이다.
현행법은 벌꿀의 원활한 생산을 위한 밀원실물(꿀벌 먹이가 되는 식물) 지원 조항은 두고 있지만, 개체수 확보 등 꿀벌 보전을 위한 직접 지원 항목은 두지 않고 있다. 개정안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상기온 등 기후변화로 양봉산업에 피해가 났을 때 조사·연구 및 지원 계획을 마련토록 했다. 양봉농가 직접 지원의 근거를 담은 것이다. 꿀벌보전시설의 설치·운영을 통해 꿀벌 개체수 확보와 집단폐사 대책을 추진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했다.
이상기후와 바이러스
꿀벌 개체 수 감소의 원인으로는 이상기온과 더불어 바이러스가 가장 먼저 꼽힌다. 서양종 꿀벌에서는 총 15가지의 바이러스 감염이 보고된 바 있다. 꿀벌 바이러스는 꿀벌에게 질병으로 확인되기도 하고, 바이러스가 원인인 것으로 추론 가능한 현상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CCD 원인에 대한 가설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꿀벌에 기생하는 진드기인 꿀벌응애다. 펜실베니아 대학 다이안 콕스 교수는 “CCD로 죽은 모든 벌에게 18개 이상의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며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콕스 교수가 그 바이러스의 감염 원인으로 주목한 것 역시 꿀벌응애다.
아시아지역에서 유래한 ‘바로아응애(Varroa mite)’, 꿀벌응애는 1mm 남짓한 진드기인데, 꿀벌의 기관지에 기생하면서 피, 지방체 등을 빨아먹고 바이러스를 옮긴다. 응애에게 지방체를 빼앗긴 꿀벌은 면역력이 약해져서 농약을 해독할 능력을 읽게 되고 다른 질병에도 쉽사리 감염되어 2차, 3차의 피해를 낳는다.
우리나라에 응애 발생이 처음 보고된 건 1950년이다. 응애의 종류 중 하나인 바로아응애는 1968년부터 이미 곳곳에 만연했고, 최근 꿀벌에 피해를 입힌 가시응애 역시 1990년대 중반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꿀벌의 군집 붕괴는 불과 3년 전부터 난데없이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국내 꿀벌 실종 사건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무게가 실린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전 세계 곳곳에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역시 사계절이 무색한 이상기후가 자주 포착되었다. 2020년 우리나라의 벌꿀 생산량은 4,643톤이었다. 1년 전인 2019년 생산량(6만5,952톤)의 7%에 불과했다. 2020년 역대 가장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꿀벌들은 비행이 어려워 꿀을 모으지도, 먹지도 못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해 중부지방의 장마일은 54일, 제주는 49일로 관측 이래 최장이었다.
전문가들은 변온동물인 꿀벌에게 이상기후가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기온이 높은 날씨가 계속 되면 가을, 겨울임을 알지 못하는 꿀벌이 외출을 했다가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꿀벌은 여왕벌, 수벌, 일벌로 구분되는데 일벌은 탄생 시기에 따라 여름벌과 겨울벌로 나뉜다. 여름벌의 수명은 30~45일간으로 여왕벌이 산란하는 봄, 여름 시기에 태어나 애벌레가 무사히 성체가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여왕벌이 산란하지 않는 10월 초부터 가을, 겨울동안 태어나는 겨울벌들은 여왕벌이 봄철까지 무사히 버티는 것을 보좌한다.
기온이 10도 이상이 며칠간 지속되면 계절을 착각한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하고 겨울벌이 여름벌처럼 꿀을 따기 위해 외출을 시작한다. 외출한 겨울벌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면역력 전하, 농약으로 인한 기억상실증, 낮은 기온 등의 문제로 벌통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는 벌통의 애벌레 등 다른 벌들의 괴사로 이어진다.
실제로 해외 CCD가 발생한 2006년에는 이상기후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해 10월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구의 갑작스런 온도 상승으로 꽃들의 개화 시기와 꿀 분비량이 변화를 일으키고, 꿀벌은 혼란해진다.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봄으로 착각하고 꿀을 따러 날아다니다가 꿀벌이 맨손으로 돌아오고, 이런 일이 겨우내 반복되면 꿀벌은 지쳐서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공생 그리고 붕괴
꿀벌의 실종은 양봉농가뿐 아니라 전체 작물의 재배, 나아가 인간의 존속까지 영향을 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벌은 지금으로부터 약 5천만 년 전 처음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로 현재까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벌의 종류 중에서 꿀벌은 꽃가루와 꿀을 얻으러 다니는 먹이채집 활동 과정에서 꽃의 수분을 자연스럽게 돕는다. 이처럼 꿀벌은 꽃들의 수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연 생태계 유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꿀벌의 존속과 인간의 생존 간에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말한다. 2008년 국제환경단체 ‘어스워치’는 꿀벌을 지구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생물’로 꼽기도 했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종 중에 중요하지 않는 것이 있겠냐만은 꿀벌의 역할은 작물 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한다.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작물의 상당수가 꿀벌과 같은 매개 동물의 수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은 1,500여 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 30%가 꿀벌의 수분에 의존한다. 이런 꿀벌의 수분 조력 활동의 경제적 가치는 약 38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에 따르면, 식량 작물 종의 75%가 꿀벌 등의 수분에 의존한다. 사과, 호박, 오이 등 꽃을 피우는 대부분 식물, 우리가 먹는 열매의 90% 가량이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 2019년 미국 미생물기업 시드는 꿀벌 멸종을 가정한 인간의 아침 식사 장면을 선보인 바 있다. 꿀벌이 없는 시대, 인간의 식탁은 꿀벌의 수분이 없이도 자라나는 뿌리채소로 가득했다. 샐러드에는 자몽, 아보카도, 오이 등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과 야채를 찾아볼 수 없었고, 드레싱에 뿌릴 꿀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앞서 CCD를 겪은 미국, 유럽 등 해외의 선례를 살피고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 '화분매개자 뉴딜(New Deal)'을 발표했다. 꿀벌 나비 등 화분매개생물의 감소세를 2030년까지 회복세로 돌려놓겠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2015년 '꿀벌 등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하고 서식지 확대를 통한 폐사 방지 정책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