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서 소설가로, 인간에 대한 탐구의 기록
신작 3편 집필에 집중…“일상 달라지지 않길”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한강 작가 기자회견 중)소설가 한강이 지난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수상이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의 나라가 됐다.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역대 121번째 수상자로 우리나라 작가 한강을 호명했다.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여성 작가
한강은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여성작가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한림원은 한강의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고 밝혔다.
노벨 문학상 (스웨덴어: Nobelpriset i litteratur)은 스웨덴 한림원 이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작가들에게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1895년 알프레드 노벨 의 유언 으로 제정된 다섯 가지 노벨상 중 하나로, 노벨상은 화학, 물리학, 문학, 평화, 생리의학 분야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이들에게 수여된다.
한강의 문학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지난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인의 ‘부커상’ 수상은 한강이 최초이다. ‘채식주의자’는 수상 당시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강의 수상과 함께 그의 작품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37)에도 시선이 쏠렸다. 한강의 작품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데에 번역가의 공을 인정한 셈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스미스는 6년 전 한국어를 독학으로 시작한 번역가다. 스미스는 한강 작품의 번역과 관련 “문학적 감수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외면할 수 없는 폭력, 끝없는 인간탐구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났다. 작가 활동은 소설이 아닌 시로 출발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데뷔,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붉은 닻’으로 소설가로 등단했다. 당시 필명은 한강현(韓江賢)이다. 한림원 측은 소설 한강의 이력과 관련 글쓰기에 대해 장르상 큰 폭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한강은 서정적인 문체와 독특한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이다. 1995년 출간한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이어, ‘몽고반점’,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작별하지 않는다’ 등 소설은 물론 시, 동화책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2007년에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2018년까지 10년간 후학 양성에도 힘쓴 바 있다.
한강의 소설 속 공통된 키워드는 ‘폭력’이다. 그는 한국 역사의 큰 사건들과 함께 인류 보편의 문제인 폭력에 특유의 섬세한 문장으로 접근한다. 첫 장편 ‘검은 사슴’(1998)에서 폭력에 시선을 보낸 이후, 2014년작 ‘소년이 온다’에서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루어 문학을 통해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는 그의 취향을 꾸준히 드러냈다.
한강이 폭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소설가였던 아버지 한승원이 보여준 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첩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13세였다. 한강은 이와 관련하여 한 강연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종류의 폭력이 담겨있다”면서 “역사적 사건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요한 자축, 집필에 집중
한강은 조용한 자축 이후 다시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벨문학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문단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한 일상을 기대한다. 수상소감을 받아 적으려는 언론의 기자회견을 마다하고 잔치를 열겠다는 가족들의 제안도 조용히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일 조용히 자축했고, 이후 17일 포니정재단이 주최한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이날 노벨문학상 수상의 소감을 기대하고 몰려든 취재진 앞에선 한강은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면서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그가 작가로 활동한 지 삼십년이 되는 해다. 한강은 앞으로 작가로서 남은 시간을 집필에 몰두할 계획이다. 그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삼십 년이 되는 해”라며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된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전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은 작가로서의 영예와 함께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원)를 받게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한강의 신작 출시 예정 시기는 내년 상반기이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한다”고 전했다.

제 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한강 소감 전문
원래 이틀 전으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진행했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걸음하지 않으셨어도 되고, 이 자리를 준비하신 분들께도 이만큼 폐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셨으니, 허락해 주신다면 수상소감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간략하게나마, 아마도 궁금해하셨을 말씀들을 취재진 여러분께 잠시 드리겠습니다.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습니다.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어서, 그날 밤 조용히 자축을 하였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후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들에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하여서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고자 합니다. 제가 출간한 책들에 관련된 일들은 판권을 가진 해당 출판사에 부탁드리고, 그 카테고리에 잡히지 않는 모든 일들은 문학동네 담당 편집자의 이메일로 창구를 일원화하겠으니 부디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해 온 수상소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저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삼십 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 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됩니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입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지난 삼십 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 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분들과 포니정재단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