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망증명서’ 진위 파악 나서, 에콰도르에 협조 요청
2000억원대 체납금, 사망 확정시 환수 불가... 국세청 합세
IMF의 방아쇠를 당긴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생사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 씨가 해외도피 21년 만에 국내로 송환되면서 부친이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정 전 회장은 과거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해외로 출국해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2000억원대 체납금이 허공으로 증발한다. 검찰은 정한근 씨 주장의 진위 여부를 따져볼 계획이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자 주>
[한국뉴스투데이]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IMF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건설, 철강 분야를 주력으로 재계 순위 순위 상위권에 랭크된 한보그룹의 사업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 정관계에 대규모 로비를 실시한 인물이다.
로비를 통해 당시 한보그룹은 은행권에 5조원 이상의 대출을 했고 이에 따라 한보그룹의 재무건정선은 물론 국내 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는 IMF로 이어졌다. 이후 정 전 회장은 로비 행각이 발각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2002년 사면됐다.
지난 2007년 정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대학 교비 70여 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도중 건강을 이유로 일본에서 치료를 받겠다며 출국, 13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체납금액 2000억원 고액 상습 체납자 사망?
정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자’ 중 체납액 1위로 체납금액이 2225억원에 달한다.
2007년 이후 행방이 묘연한 정 전 회장은 각종 비리 문제에 얽혀있을 뿐만 아니라 고액 체납자인 만큼 검찰의 추적을 받아왔으나 그 소재 또는 생사 여부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특히 정 전 회장은 1923년생으로 생존해 있다면 2019년 기준 96세인 만큼 생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정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IMF 사태의 주역이자 해외도피 행각을 벌여온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 씨가 도피생활 21년 만에 국내로 송환되면서 정 전 회장의 생사 여부에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송환된 정 씨가 부친의 사망에 대한 진술과 함께 관련 증거까지 제출해 정 전 회장의 사망설에 신빙성이 더해졌지만 검찰은 그의 생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진위 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 검찰이 파악한 정 전 회장의 사망 관련 단서는 ▲유골함 ▲정 씨의 진술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사망증명서 등 총 세 가지로 압축된다.
◇검찰, 사망증명서 진위 파악 나서
하지만 검찰은 세 가지 단서에 대해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다며 검증에 나섰다.
먼저 정 전 회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함은 검증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장된 유골의 경우 DNA 감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 씨의 진술 역시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으며 정 씨가 다른 의도로 거짓 진술을 했을 소지가 있어 무조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검찰은 ‘사망증명서’의 진위여부를 밝히는 것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당 증명서에는 정 전 회장이 도피 생활에 사용한 위 조여권상 이름과 일치하는 인물이 지난해 12월 1일 신부전증에 따른 심장 정지로 숨졌다고 기재 돼있다.
검찰은 에콰도르 당국에 해당 증명서를 발급한 사실이 있는지, 사망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지 등 사실관계를 파악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생존 여부와 소재에 대한 단서를 확인 중이며 이르면 이번 주 관련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추적해 환수할 것, 국세청도 가세
정 전 회장의 사망이 최종 확인될 경우 2225억 2700만원의 체납금은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해지며 그에게 적용된 횡령 등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게 된다. 이에 검찰은 정 전 회장의 소재 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세청도 검찰과 함께 정 전 회장의 소재와 그의 은닉재산을 파악해 체납금을 환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김현준 국세청장 내정자는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 전 회장에 대해 “(현재 주로 외국에 있는 은닉 재산을 찾고 있다”며 철저히 조사해 체납금을 징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전 회장의 소재 파악에 대해 검찰에 이어 국세청까지 가세하면서 관검이 연계한 다각적인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 전 회장의 정확한 소재 파악을 통해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한보사태의 종지부를 찍고, 해외 도피 사범에 대한 끈질긴 추적을 통해 처벌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