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특별기획】 국가인권위원회로 보는 차별금지법의 미래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국가인권위원회로 보는 차별금지법의 미래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1.11.12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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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바로알기 ⓸]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최초 발의 이후로 7차례나 발의됐지만 거듭 무산됐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만큼 그것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거셌기 때문이다. 현재 차별금지법에 관한 네 개의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하고 위원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 역시 중요한 쟁점이 되는 지금, 한국뉴스투데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차별금지법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가인권위원회의 건물 외부 모습. (사진/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의 건물 외부 모습. (사진/국가인권위원회 갈무리)

[한국뉴스투데이]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출범 이후 18년간 차별금지법 제정 역사의 중추에 자리해왔다. 현재 발의안대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시행에서도 구제조치나 권고, 시정명령을 집행하는 등 핵심적인 주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차별 여부의 판단 기준이 인권위 내부에 있었던 만큼, 인권위의 기존 판례들로 차별금지법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노키즈존은 차별

지난 2016씨는 자녀 셋을 데리고 파스타와 샌드위치 등을 파는 제주도의 한 식당에 방문했다. 그러나 식당의 주인은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13세 이하 아동의 식당 이용을 제한하기로 했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이른바 노키즈존은 계속해서 불어나, 카카오맵 등 몇몇 지도 어플리케이션은 식당 설명에 노키즈존 태그를 추가하기도 했다. 이후 노키즈존뿐만 아니라 노배드패런츠존·노스터디존·노튜버존·노시니어존 등 특정 집단의 출입을 막는 각종 업소도 잇따라 등장했다.

당시 인권위는 씨의 사례에 대해 상업시설의 운영자들은 최대한의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헌법 제15조에 따라 영업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원하는 방식대로 시설을 운영할 자유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특정한 집단을 특정 공간 및 서비스의 이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사유가 인정되어야만 한다며 특정 집단의 출입을 막는 운영 방식에 우려를 드러냈다.

또한 모든 아동이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며, 아동 출입의 원천적 제한 말고도 운영자가 취할 수 있는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인권위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이용 제한은 합리적이지 않아 차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노키즈존은 특정 공간을 이용하는 사례로서 재화·용역에서의 차별에 해당한다. 공간의 이용 외에도 대출이나 보험 등 금융서비스, 토지·건물의 매매나 임대, 보건 의료 이용, 문화·체육시설 이용, 정보통신·방송서비스 공급 등이 재화·용역에 포함된다.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차별의 구제는 진정 및 권고 차별행위의 중지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피해자 법률구조 및 소송지원 법원의 구제조치 손해배상 등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시행 후에는 노키즈존이 운영되면 차별로 분류돼 운영자는 시정명령을 부과받고 불이행 시 이행강제금을 물 수 있으며, 피해자인 이용자는 법률구조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11월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IV/AIDS 감염인들의 치료접근권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HIV/AIDS 감염인들은 낮은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거부되거나 채용이 제한되는 등 차별을 겪어 왔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11월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IV/AIDS 감염인들의 치료접근권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HIV/AIDS 감염인들은 낮은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거부되거나 채용이 제한되는 등 차별을 겪어 왔다. (사진/뉴시스)

보균 사실만으로 채용을 거부한다면

지난 2009씨는 종합병원의 임상병리사 채용에서 면접시험까지 합격했지만, 신체검사 결과에서 B형 간염 양성 판정을 받아 탈락했다. 해당 종합병원은 임상병리사의 경우 환자의 조직과 혈액 등을 다루기 때문에 B형 간염의 전염 가능성이 있어 불가피한 제한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무 중 임상병리사의 혈액이 환자에게 접촉될 가능성은 적었다. B형 간염은 HIV/AIDS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수혈이나 성접촉 등을 통해 주로 감염되고 일반적인 공동생활로는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 대한간학회 역시 기침이나 재채기 정도의 타액 교류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며 B형 간염 보균자의 일상 격리는 불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인권위는 다른 임상병리사들과 마찬가지로 오염방지 수칙을 준수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히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질병을 근거로 채용을 거부한 해당 병원의 결정은 차별이라 판단했다.

이처럼 보균자의 감염 가능성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보균 사실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승진에 제한을 두면 차별로 판단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관여하는 네 공공영역 가운데 고용 문제에는 채용·배치·승진·해고 등 전반적인 인사 과정이 모두 포함돼, 차별금지사유를 근거로 부당한 인사 제한을 두면 권고나 시정명령 등의 대상이 된다.

달라지는 학교의 모습

지난 2008년 인천의 한 고등학교는 칸막이를 따로 설치해 독서실과 같이 환경을 조성한 일명 면학실을 운영했다. 일반 학생들은 대개 교실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했지만, 성적순으로 선발된 30명 내외의 학생들은 면학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성적우수자에게만 특별 자습실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해당 고등학교만은 아니었다. 강원도의 10개 고등학교에 더불어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유사한 정독실운영으로 진정이 접수됐다.

인권위는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시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성적뿐만 아니라 자습에 대한 의지나 성적 향상 정도, 교우관계, 가정형편 등 여러 지표를 고려해 입실 기회를 부여하라고 권했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성적으로 학급회장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 자치단체가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 학원을 운영하는 것 역시 차별로 규정했다. 성적을 기준으로 차별적인 교육 환경에 배치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의 학습 환경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이처럼 차별금지법은 재화·용역, 고용, 교육, 행정서비스라는 네 공적 영역을 차별금지법의 적용 대상 범위로 정해두고 있다. 공적 상황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해도 대응할 방도가 없었던 취약 계층에게 효과적인 구제 수단이 될 것이란 기대가 모이고 있다.

한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불합리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차별금지법은 이를 시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 장치라면서 국회에 조속한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가 차별금지법안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인 2024529일로 재차 연장하면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다시 불투명한 상태에 놓였다. 이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8일부터 국회 앞 24시간 농성을 진행하며 연내 제정계획 마련과 구체적 논의의 시작을 촉구하고 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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