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를 내 편으로 
소인배를 내 편으로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12.1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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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좋은 사람들만 상대하고 싶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싫든, 좋든 마주치고 부딪혀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싫은 사람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만났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만났다.  
그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함께 일하던 피디였다. 그 피디는 지금껏 일해 왔던 피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피디다. 물론, 좋지 않은 의미로.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그 피디와는 한 달 정도 정말 유쾌하게 잘 지냈다. 나에게 이런 행운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게스트가 시간 배분을 잘 못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생방송이 끝난 적이 있다. 말하자면 10개의 질문을 준비했는데, 앞의 질문에 답변을 길게 하는 바람에 3~4개 답변 밖에 하지 못했던 것. 

그때부터 피디의 행동이 달라졌다. 방송이 끝난 직후 나에게 지적을 하더니 이후부터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계속…
물론, 섭외는 내가 한 것이니 그 게스트가 잘 하지 못한 거라면 일말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생방송에선 그런 일은 흔한 일이라 그리 화를 낼 것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오랫동안 꽁하고 있을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피디의 마음이 풀어지고 관계도 예전처럼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헛된 희망이었다. 설마 그 사건(?)으로 그리 오랫동안 화를 내겠냐 싶은 마음에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고, 이유도 물어보고 했지만 묵묵부답. 결국 나도 관계 개선의 노력은 포기하고 똑같이 말하지 않고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그동안 나의 마음은 어땠겠는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매일 보는 사이에 말 안하고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겪어보지 않고는 그 스트레스를 이루 말도 못한다. 
방송국에선 말도는 게 부담스러워 얘기도 못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면서 마음을 풀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때까지 견디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군자는 척을 져도 되지만…
소인배는 절대 척을 져서는 안 된다.”

그 친구 왈, 군자는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에 소원한 관계가 되거나 의견이 맞지 않아 관계가 틀어져도 나에게 나쁜 결과가 오진 않지만 소인배는 다르다는 것이다. 
소인배는 작은 것을 크게 생각하고, 작은 것을 꼬투리 잡아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 소인배가 앙심을 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결국 그 피해는 소인배와 척을 진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때문에 상종 못 할 소인배라도 관계를 끝낼 때는 절대 좋지 않게 끝내서는 안 되고, 싫어하거나 나쁘게 생각한다는 걸 당사자가 알게 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 대응하는 나는 소인배에 대한 생각으로 얽혀서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감정을 소비해야 한다.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차! 싶었다. 이미 소인배와 척을 져버렸으니 그 힘듦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소인배를 잘 다루지 못한 미숙함 때문에 몇 달 동안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이후, 나는 소인배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절대 척을 지지 않기로 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싫은 티를 내거나 멀리하기보다는 앞에서는 웃으며 호감이 있는 척 연기(?)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일적인 관계가 끝나면 오래 볼 사람도 아니니 내 마음을 드러내며 진실 되게 다가갈 필요도 없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소인배로 하여금 나를 적대적으로만 보지 않게 하면 된다. 

오직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나의 귀중한 시간을 소인배 따위를 욕하거나 불만을 얘기하면서 허비하지 않도록 소인배를 내 편으로 만들기로 했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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