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수주 앞두고 신경전
군사기밀 불법 탈취에 HD현대 임원의 연루 여부 핵심
한화오션의 거제, HD현대의 울산 지역 정치권도 들썩
[한국뉴스투데이] 올해 연말로 예정된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수주를 앞두고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하면서 수주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같은 소송전은 국내 조선업계 역사상 이례적인 일로 눈길을 모은다. 특히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수주전에는 지역 정치권까지 나서서 힘을 보태고 있어 더욱 수주 결과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고발
지난 4일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군사기밀 탐지 수집 및 누설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과 관련해 이같은 행위를 지시하거나 개입·관여한 임원을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했다. 국내 조선업계의 방산 라이벌 관계인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업계 최초의 사태다.
한화오션이 고발장을 제출한 이유는 지난 2012년~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수차례 방위사업청과 해군본부 등을 방문해 KDDX 개념설계보고서 등 군사기밀을 불법으로 탈취하고 이를 회사 내부망에 공유하면서 입찰 참가를 위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국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문제는 지난 2월 27일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의 대표와 임원이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당업체 심의를 '행정지도' 처분으로 의결하면서 시작됐다. 부정당제재를 받은 경우 최대 5년간 방위사업청 사업 입찰참가 자격제한과 수의계약을 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는데 이를 면제해 준 것. 다만 보안 규정에 따라 방위사업청 사업 입찰 때 부과하는 보안 감점(-1.8점)은 오는 2025년 11월까지 유지된다.
이에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고위 임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나 관여 없이는 수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대담한 방법으로 군사기밀을 탈취해 회사 내부에 비밀 서버를 구축·운영하면서 관리하고, 수사를 회피하기 위한 대응 매뉴얼까지 작성하는 일련의 조직적인 범행이 일어나기 어렵다“면서 HD현대중공업의 대표와 임원에 대한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촉구했다.
올해 말로 예정된 KDDX 수주 신경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소송전까지 벌이며 힘겨루기를 하는 이유는 올 연말로 예정된 KDDX 상세설계 수주 때문이다. KDDX는 해군과 방위사업청이 앞서 KDX(한국형 구축함) 사업에 이어 추진하는 경하 배수량 7100톤급 구축함의 사업명으로 선체부터 전투체계,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 탄도탄 탐지·추적 능력 등 모두 국내기술로 건조되는 첫 국산 구축함이다.
‘한국형 이지스함’으로도 불리는 KDDX에는 함정의 레이더 반사 면적(RCS) 감소를 위한 통합마스트 및 소음 감소를 위한 추진체계 등 스텔스 설계까지 적용된다. 이에 해군은 지난 2020년부터 개발비 1조8000억원, 건조비 6조원 등 총 7조8000억원을 들여 오는 2036년까지 총 6척을 취역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국내 조선업계 양강 중 한 곳인 한화오션은 개념설계를 수주했고 또 다른 한 곳인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각각 수주한 바 있다. 올해부터 상세설계 및 선도함 수주가 시작되는 가운데 기본설계를 수행한 기업이 향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수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당초 업계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한화오션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이 불법으로 개념설계보고서 등을 빼돌렸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감점 1.8점을 받아 수주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특히나 HD현대중공업 대표나 임원이 불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부정당제재를 받게 돼 방위사업청 입찰 제한을 받게 된다. 이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의 연루 여부는 향후 수주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 됐다.
지역 정치권까지 나서 전면전 양상
이에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이번 소송전에 사활을 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역 정치권까지 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한화오션이 위치한 거제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KDDX 사업과 관련해 불법이 확인된 HD현대중공업의 강력한 제재를 촉구했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출마를 앞두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발언에는 한층 힘이 실렸다.
거제에 출마한 서일준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유죄가 확정된 HD현대중공업 직원이 조사를 받으면서 KDDX와 관련한 군사기밀을 불법 취득한 사실을 보고한 보고서에 임원이 결재한 정황이 담긴 진술이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 자격 유지 결정은 특혜 의혹을 불러오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변광용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역시 “국민과 거제시민·업계는 방사청이 현대중공업에 상식적이고 공정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국 국민과 거제시민·업계의 상식적 기대를 무참히 내팽개치고 비상식·불공정으로 재확인시켰다”며 “방위사업청의 납득할 수 없는 봐주기 결정으로 거제시민과 업계가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에 지역구를 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2일 열린 ‘해양 방위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HD현대중공업은 1980년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울산함을 건조한 이후, 현재까지 함정 110여 척을 건조한 대한민국 최고 해양방위산업 기업”이라며 “국내 다른 방산 분야처럼 함정 분야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잠수함과 호위함급 이상을 연구개발·건조하고 다른 조선사들은 중소형 함정으로 전문화해 수출 시장까지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 역시 “방위산업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데 어느 한 업체에 전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HD현대중공업 함정 분야의 매출이 늘어나면 지역 내 고용 증가와 지역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역 국회의원으로써 HD현대중공업이 순항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