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이 주는 행복 
일탈이 주는 행복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3.02.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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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가졌다. 4대 보험도 된다. 
지금껏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원고료를 받는 게 고작이었는데, 회사에서 내주는 혜택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출퇴근이다. 다른 무엇보다 출퇴근은 정말 자신 없는 부분이긴 하다. 

오죽했으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얻을 때도 규칙적인 출퇴근만을 피해보고자 했겠는가?
그래도 잡지사나 신문사는 취재다 뭐다 해서 조금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수습에겐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1년 남짓 다니다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런 나에게 직장의 출퇴근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처음부터 9to6 출퇴근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고용주 입장에선 어디 처음의 마음과 같으랴. 아니, 그들의 마음은 같을지 모르나 내 스스로가 눈치를 보게 됐다. 4대 보험과 같은 혜택을 회사에서 주는데 그 만큼을 나도 줘야 하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내린 방책은 일이 없어도 잠깐이라도 회사에 나가 얼굴을 비치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 꼬박꼬박 출퇴근을 하는데 나만 예외가 되면 분위기를 흐릴 것 같았다.  

하지만, 회사에 나가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내 안에선 불만이 커졌다. 
일은 집에서 하는 게 습관이 돼서 회사에선 일을 하지 못하고 기껏 나가서는 잡담 조금하고, 같이 밥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점점 회사 가는 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습관이 안 되는 일에 적응하려니 몸도 피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하고 아예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않는 시간에 특별히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고양이와 놀고, 딩굴딩굴하며 TV를 보고, 낮잠을 자고.
회사에 나갈 때는 그렇게 시간이 금방 가더니 그날은 하루가 꽤 길게 느껴졌다. 주말, 휴일에 쉬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 안에서 빠져나갔던 뭔가가 다시 차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문득, ‘이게 바로 행복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길 들은 혹자들은 ‘참 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시간 날 때마다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일이 중요하지, 아무 하는 일 없이 보냈던 나의 일탈(?)이야말로 시간낭비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무엇을 위해 사냐’는 질문에 충실히 답을 한 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산다. 
‘왜 사냐’고 묻거나 ‘무엇을 위해 사냐’고 누가 묻는다면 돈을 벌기 위해 산다거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산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못하고 행복을 만들어줄 것 같은 수단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대부분이 머릿속으로는 그 ‘수단’ 자체가 행복이 아닌 줄 알지만 현실에선 어디 그런가? 
그 ‘수단’을 행복이라 착각하는 건 아닐까? 몸을 혹사하는 사람들, 돈 버느라 가족들에게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쁘게 살다보니 맑게 갠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못한다. 바로 앞에 행복이 있어도 그걸 걷어차 버린다. 그리고 행복을 만들어 줄 ‘수단’을 택한다. 그 사이 나에게 다가오려던 진짜 행복은 더 멀어질 뿐.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일생에 100억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지 물으니 돈 때문에 하지 못하거나 미적거리는 일을 맘껏 해보기 위해서란다. 사람들과 맘껏 여행을 하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거 원 없이 사주고 싶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그 100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는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사느라 돈 쓸 시간이 없는데? 이번에 그의 대답은  짤막했다. ‘나는 그들과 달라.’

난 그들과 다를까? 
만약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월급을 지금보다 10배 이상 후하게 준다면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자 하는 나의 일탈(?)을 그만둘 수 있을까? 그건 그때 가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하고, 고만고만한 이 상황에선 수단 대신 행복을 택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다음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뿐한 마음으로 회사에 갔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잡담을 나눴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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