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사람 人(인).
글자의 모양을 보고 이렇게 해석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서로 기대고,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당최 서로 기대는 것이 쉽지 않다.
세대 간 차이는 커서 서로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동년배라도 나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갖고 있다면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멀리한다. 오죽하면 요즘 친구들 중엔 같이 잘 다니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드라마에 시큰둥하거나 싫다고 하면 하루아침에 ‘왕따’를 해 버릴까.
어른이 돼 직장을 다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하거나 나서면 잘난 체 한다며 뒷말하기 일쑤다. 일을 열심히 해 성과를 내도 진심으로 축하하기 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상대방이 잘 안되길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고 본인이 더 잘 나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집이라고 언제나 편안하고 안락한 곳일까?
나름 아이들을 위해 신경을 쓰는 부모는 자식이 왜 삐딱하게 나가는지 모르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한 가족이 밥 한 끼 함께 먹기도 힘들어진 건 옛날이고, 어쩌다 같이 먹는다고 해도 대화가 없어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늘 외롭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늘 사람들과 함께하지만 외롭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마치 외국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그래도 내 맘같지 않은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상대방을 살펴서 튀는 행동이나 말은 삼가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로 군중 속에 묻혀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원래 나는 이렇지 않은데…’
누구보다 활기차고, 개성이 넘치고, 비범한 존재인데…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깎이고 깎여서 둥글어졌다. 예전에 스스로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 모습이 나인지, 저 모습이 나인지 헷갈려버렸다. 진정 이것이 사람 人(인)자가 뜻하는 것이었던가?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군중’만 남아버린 것이 더불어 사는 우리의 세상이었던가?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 같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행성에서 왔기에
서로 통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당연한 거지.’
얼마 전 봤던 <치이로 상>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다. 소통하지 못하고 교감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사 하나로 명쾌하게 풀어냈다.
예전 대학 때 이와 비슷한 얘길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랑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 힘들게 그들과 맞추려고 자신을 버릴 필요는 없어.’
요즘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친구 사이가 틀어져서, 지독하게 외로움을 느껴서 안정제 같은 약을 찾거나 상담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남들은 잘 해내고 잘 견디고 있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스스로 움츠러들고, 점점 더 작아진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주변의 시선만 신경 쓰게 된다.
하지만 소통하지 못해 외로운 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나의 별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모가 비슷해서 같은 별 사람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그래! 아직…….
만약 같은 별 사람을 만난다면 그들은 나를 한눈에 알아볼 것이고, 나도 그들을 한 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는 외롭더라도 조금만 더 견디자. 정 견디기 힘들다면 직접 찾으러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 세상 어디에는 나와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림없이!
그때가 되면 비로소 사람 人(인)자의 해석대로 진짜 서로 기대며 살 수 있을 것이다.